동은스님
동은스님

근처에서 수행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보살님께서 오셨다. 차 한 잔을 하며 당신의 지나온 삶을 털어 놓으셨다. 십여 년 전,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삶을 포기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마지막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기도나 하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어 상원사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보궁으로 올라가다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산중 토굴에서 수행하고 계셨는데 적멸보궁에 기도하러 가신다고 했다. 토굴생활이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 보살님은 가지고 있던 총재산 10만원을 스님께 보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궁에서 며칠 기도를 하려면 기도비, 즉 숙식비를 내야했다. 접수대 앞에서 이 보살님은 난감해졌다. 조금 전에 기도비로 가지고 왔던 돈을 토굴 스님께 전부 보시해서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접수하는 분께 사정을 했다.

“저, 혹시 기도비도 외상이 되나요?” “뭐라구요? 내가 여기 있으면서 기도비 외상 해달라는 사람은 처음 봤네요.” 그러나 사정을 들은 접수 보살님이 스님께 말씀드려 ‘외상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삶의 막다른 길에서 전 재산을 보시한 보살님. 그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그 때 만난 분의 소개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불보살님의 가피가 아니었겠냐며 웃으셨다.

전에 급히 어딜 가느라 지갑을 두고 나갔는데 자동차 연료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보니 아차, 돈이 하나도 없었다. 난감했다. “저기 아저씨, 제가 지갑을 두고 왔는데 외상이 안 될까요?” “그래요? 스님이 떼먹진 않으시겠죠? 다음에 오면 주세요.” 그 주유소는 이제 단골이 되었다.

외상거래는 상대방을 믿는 것이다. 때론 손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곤란한 사람에게 내가 먼저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외상은 갚아야 한다. 공짜와 다르다. 인생이란 살아가면서 내가 받은 도움을 하나씩 갚아 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지금 부처님께 진 외상을 열심히 갚고 있는 중이다.

[불교신문3527호/2019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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