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산문 부문 대상 작품

큰스님 등불

이윤서 (고양예술고1)


집은 너무 심심했다. 더구나 건설현장에서 노동일을 하던 아버지가 낙하물에 맞고 골절상을 입어 집에서 쉬는 동안은 더욱 그랬다. 아버지는 일을 나가지 못했고 온종일 집에서 잠만 잤다. 엄마는 공장에 가면서 나한테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신신당부 하고 나갔다.

아버지 잠 깨지 않게 조용히 하고, 누워있는 사람 머리맡으로 걸어 다니지 말고, 놀 거면 나가서 놀라는 건 집에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에 가까웠다. 할 일이 없는 나는 조용히 드러누워 규칙적인 벽지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가 정사각형도, 마름모꼴도 만들어 보다가는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내가 갈만한 곳은 지행이네. 지행이의 집은 절이다.

오학년이 되어 처음 만난 짝은 특별하게도 지행이었다. ‘내 짝 엄마는 스님이라는 사실이 신기해서 하교 후 식구들을 보자마자 그 소식을 전했다. 스님은 결혼을 안 하니까 애기도 낳지 않는다며, 아마도 그 애는 스님이 데려다가 키우는 애인 것 같다고 엄마는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생각엔 지행이보다 내가 더 우울한 처지인 것 같은데 엄마는 연신 내 짝이 측은하다는 표정이었다.

학교가 끝난 어느 날, 지행이가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친구의 집은 멀었다. 도착하여 자그마한 대문을 여니 보통 집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문창호지를 바른 여러 개의 문들이 보였다. 스님들께 인사를 하라고 하여 한 방문을 열고 큰스님, 작은 스님께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큰스님은 나이가 많고 근엄해 보였고, 작은 스님은 큰스님보다 젊어 보였는데 웃는 얼굴의 푸근한 인상이었다. 또 언니들도 있었다. 지심이 언니와 수연이 언니라고 했다. 고등학생 나이 정도로 보이는 그 언니들은 회색 옷이 아닌 보통 옷을 입고 있었다.

언니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언니는 대학생이고, 스님이라고 했다. 그 언니는 공부 때문에 여기에 자주 못 온다고 했다. 나와 지행이, 지심이 언니, 수연이 언니는 가장 안쪽 방에 모여 첫 날부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은 좋았다.

특히 여름방학에는 학교를 가는 대신 매일 아침 일어나 지행이네 절엘 갔다. 가구라고는 책상뿐인 작은 방에서 공부하는 큰스님의 정적인 모습과 마당에서 늘 바쁜 작은 스님의 동적인 모습이 조화로웠다. 큰스님은 항상 칭찬을 해 주시는 분이라 더 크게 여겨졌다. 지난번보다 키가 자란 것도 칭찬거리였고, 달력의 음력 날짜 같은 작은 글씨만 알려드려도 천재 취급을 해주시는 분. 나와 한없이 멀리 저 높은데 계시는 분이지만 늘 가까이 있고 싶은 그런 큰스님이었다.

작은 스님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지심이 언니는 친절했으며, 수연이 언니는 털털하면서도 손이 빨랐다. 동그란 소반 위에 차려낸 나물 반찬의 점심 공양은 소박했지만 따뜻한 인정이 넘쳐 언제나 맛이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마지막으로 언니들이 내어오는 차관의 물을 따라 마시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짙은 고동색의 시원한 마룻바닥에 엎드려 방학 숙제를 하다가 공부가 싫어지면 불단을 구경하고 어쩔 땐 잘 정리된 방석을 내렸다가 쌓으며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불단 앞에는 항상 정갈한 공양물이 놓여 있었다. , , 청수, 쌀 같은 데서는 은은하고 오묘한 향기가 났다. 특히 흔들리지 않고 타오르는 양초의 고운 불꽃은 숨을 참으며 들여다보는데, 볼 때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불교학교가 열리는 방학 기간의 며칠은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큰 절엘 갔다. 노래를 배우고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같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으며 구슬을 꿰어 목걸이도 만들었다. 심지어 국군장병 아저씨께 단체로 위문편지도 썼고 한참 뒤에는 답장을 받기도 하여 우리 모두는 뛸 듯이 기뻤었다.

룸비니를 아시나요.
룸비니를 아시나요.
부처님이 나신 곳을
여러분 아시나요.”

어디인지는 잘 모를 아득한 룸비니를 동경하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노래를 불렀다. 오렌지 맛 얼음과자를 빨아 먹으며 고단함을 달큰하게 녹였다. 지행이와 언니들 그리고 따뜻한 스님들의 절은 나에게 환한 등불과도 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방학 때처럼 지행이네 절엘 매일같이 갈 수는 없었다. 찬바람이 불 무렵 꽤나 오랜만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 날은 왠지 평소와 다르게 적막이 감돌았고 절 안에 슬픈 공기가 가득했다. 지행이는 나에게 법당으로 가자고 손짓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을 디딘 발이 벌써부터 시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맡아보는 깊고 향긋한 냄새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양초들, 가운데 금색 부처님. 모두 그대로였다.

있잖아, 큰스님이 많이 편찮으시다.”

지행이가 조용히 말했다.

…….”

내가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자 연이어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병원에도 갔다 오셨고 지금은 방에 누워 계신다.”

어쩐지, 그래서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진 거였다. 늘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실 것만 같은 큰스님이 편찮으셔서 방 안에 누워 계신다니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밤중에 자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총을 들고 들어와서는 큰스님을 잡아갔었어. 대학생 언니는 어디 있냐고 막 무섭게 소리를 지르더라. 언니는 원래 여기에 없는데.”

지행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 나쁜 아저씨들이 작은 스님도 밀치고 발로 찼어. 우리 언니랑 큰스님은 불순분자, 그런거 아닌데 불순분자라고 하면서 무섭게 욕을 하고 큰스님을 잡아갔었어.”

지행이는 아예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서러워서 지행이와 같이 엉엉 울어버렸다. 도대체 어떤 아저씨들이기에 스님들과 언니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한 건지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도 화가 나고 겁도 났다. ‘깡패 같은 사람들인가? 그런 사람들이 또 다시 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큰스님은 잡혀가시고 나서 한참 뒤 절에 돌아오셨는데 그 뒤로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잘 드시지도 못한다고 했다.

지행아, 울지 마. 그리고 우리 부처님께 빌자. 큰스님 빨리 낫게 해주시라고. 그리고 그 나쁜 사람들은 경찰에 잡혀가라고 빌자.”

나는 맨날맨날 빌고 있어.”

하지만 모두의 애타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어느새 앙상한 가로수 가지 끝에 눈발이 스치는 추운 계절이 성큼 왔다.

엄마는 절에 가지 말라고 했다. 괜히 뒤숭숭한데 가서 정신없이 굴지 말라는 소리였다. 헌데 나도 그런 눈치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절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발걸음을 쉽게 끊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점퍼의 지퍼를 쭉 끌어당겨 올리고 집을 나섰다. 시장을 지나는 길에 줄줄이 걸린 생선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가게에서 가격이 가장 싼 양미리였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가늠해봤다. 달고 기름진 꽁치에 비해 뻣뻣하고 꾸덕꾸덕해서 식감은 덜하지만 수중의 돈으로는 다른 건 살 수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양미리가 엮인 노란 노끈을 손잡이 삼아 절에까지 들고 걷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것은 기운을 못 차리는 큰스님께 드릴 선물이었다. 칭찬을 받는 상상을 했다. 누워만 계시던 큰스님이 기적적으로 일어나 자리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시고 이제 다 나았다고 할 것만 같았다. 두근대는 심장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세 절에 다다라 지행이네 대문을 열었다. 나는 큰스님께 드릴 양미리 두름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 스님들은 고기랑 생선을 안 드셔.”

지행이의 말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약으로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며 작은 스님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큰스님은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 돌아오시면 나중에 여쭈어 보자고 하셨다. 그 말씀은 서운해 할 나를 봐서 하신 말씀이 틀림없었다. 큰스님이 생선을 드실 리가 없었다. 큰스님은 언제라도 어긋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니 말이다.

어느덧 겨울 방학이 되었으나 집 가까운 곳에 친한 친구가 생겼기 때문에 굳이 먼 지행이네 절까지 가서 노는 일은 없어져 버렸다. 육학년이 되어서는 지행이와 다른 반이 되었고 그 뒤로 한동안은 그 애에 대해 잊고 지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절에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내내 소원하게 지내다가 뜬금없이 찾아가는 것은 부끄럽고 어색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같이 놀자는 말이 안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큰스님은 다 나으셨는지, 두 언니들도 스님이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기가 쑥스럽고 어려웠다.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발걸음이 지행이네 절을 향했다. 그냥 앞에까지만 가서 겉에만 보고 올 생각이었다. 대문 앞에 다다라 마당 안을 기웃거리며 머뭇거리는데 저만치에서 시주를 받아 바랑을 메고 돌아오는 작은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지행이랑 놀려고 왔니?”

스님 안녕하세요? , 그런 게 아니고, 그냥요.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오랜만이라고 반겨주시는데 무색하게도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엉뚱한 대답이 나와 버렸다.

저기, 스님, 그런데요, 큰스님은 다 나으셨어요?”

으음. 큰스님께서는 등불이 되셨단다.”

갑자기 목구멍 안쪽이 뻑뻑하게 조여 오면서 쓰라렸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끄러미 작은 스님의 장삼 소맷자락만 내려다보았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 안에, 아무 가구도 없고 앉은뱅이 작은 책상만 하나 있는 그 작은 방 안에 큰스님이 앉아 공부를 하고 계실 것만 같았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투둑떨어졌다. 멍한 눈동자를 들었을 때 언제나 꼿꼿하게 가부좌를 한 큰스님의 모습과 근엄하신 표정과 밝은 빛이 마음속에서 차례차례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서 반짝이던 무언가는 여러 겹의 꽃잎을 벗어나 이내 파란 하늘 위로 올라 커다란 등불이 되었다.

 

심사평

윤재웅(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 사범대학 학장)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 화자는 5학년, 6학년 소녀의 눈으로 조그만 절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해 나간다. 5학년 서술자의 친구 지행이. 지행이가 사는 절집. 찾아가보니 큰스님과 작은스님이 계시고, 고등학생 언니들이 둘이나 있으며, 또 한 언니는 대학생이어서 자주 못 온다는 걸 알게 된다.

환한 등불 같은 절. 서술자는 지행이와 지행이의 두 언니들과 함께 행복하고 좋은 추억을 만든다. 자기 집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인 아버지는 몸 다쳐서 누워 있고, 엄마는 공장에 일 나가서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가난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인데,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만 보여준다.

환한 등불 같은 절에 어느 날 슬픔이 찾아온다. 6학년이 된 서술자는 큰 스님이 편찮으시다가 등불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쁜 아저씨들이 와서 스님들을 불순분자라고 욕을 하며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도 이미 들은 터다. 환한 등불은 큰스님 등불로 바뀐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은 스님의 열반으로 마감된다.

이 작품은 10.27법난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지(telling) 않는다. 사건을 보여주기(showing)만 할 뿐이다.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전략에 잘 어울린다. 폭력을 고발하고 증언하며 참회를 통해 회향하자는 어떤 메시지도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권력의 폭력이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험사례다. 독후감 형식을 통한 ‘비판적 읽기’가 아니라 창작동화 방식을 통한 ‘슬픔과 감동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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