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했던 넋을 위로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했던 넋을 위로하다’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9.10.16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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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사회노동위,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 봉행
죽음 이후에도 쓸쓸한 이들 위해 극락왕생 발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10월12일 파주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집을 찾아 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한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10월12일 파주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집을 찾아 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한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같은 건물 2층 살던 할머니, 며칠 동안 안 보여서 가봤더니 쓰러져 있더라. 119에서 데리러 가면서 전화번호 알려주니 내가 보호자가 됐다. 나도 없이 살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들 없이 산다. 죽어서는 가족을 찾는다며 장례도 못 한다. 고기도 생선도 아닌데 냉동실에 있어야 하니 마음이 괴롭다.”

연고자(緣故者) 없이 세상을 등진 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열린 1016일 경기도 파주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추모의집. 서울 용산구 쪽방촌 쉼터 동자동사랑방 회원인 조인형 씨가 직접 적어온 추모사를 읽자 장내엔 적막이 흘렀다. 먹먹함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스님들이 또 다시 함께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혜찬스님)는 이날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를 봉행하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웠던 이들의 고혼을 위로했다. 위령제가 열린 파주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추모의집엔 아이부터 노인까지 3000여 명의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유골이 수습된 연도별로 분류돼 있다. 물론 반듯한 유골함 하나 없다. 10평 남짓한 비좁은 시멘트 건물 안 한꺼번에 보관돼 있다. 
 

무연고 사망자 위령제가 봉행되는 모습. 무연고 사망자 영단에 예를 올린 뒤 눈물을 훔치는 동자동사랑방 회원의 모습.
무연고 사망자 위령제가 봉행되는 모습. 무연고 사망자 영단에 예를 올린 뒤 눈물을 훔치는 동자동사랑방 회원의 모습.

가족이나 친척 등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이들을 일컬어 무연고자라 하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기초수급생활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문제는 해마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무연고 사망자는 2549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7.5%나 증가했다. 사태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유골은 10년 동안 이곳 추모의집에서 보관하지만, 이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집단으로 매장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빈곤의 악순환과 외로움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골은 10평 남짓한 비좁은 시멘트 건물 안 한꺼번에 보관돼 있다. 내부 봉안당에 들어가 헌화하는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의 모습.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골은 10평 남짓한 비좁은 시멘트 건물 안 한꺼번에 보관돼 있다. 내부 봉안당에 들어가 헌화하는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의 모습.

이런 가운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쓸쓸한 이들을 위무하기 위한 이번 자리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1017)에 맞춰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이날 법상·인우·현성스님 등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은 천수경, 영가축원, 아미타 정근 기도를 하며 외로운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법상스님은 이제라도 이 분들을 위해 기도를 올릴 수 있어 감사하다다시는 외롭지 않은 곳에 왕생하시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위령제에 함께한 동자동사랑방 주민과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나눔과나눔 등 빈곤단체 회원들은 스님들의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영단에 예를 올렸다. 아울러 위령제 참석자들은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준 스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무연고 사망자 영단에 예를 올리는 위령제 참석자 모습.
무연고 사망자 영단에 예를 올리는 위령제 참석자 모습.
사회노동위원 법상스님은 “다시는 외롭지 않은 곳에 왕생하시길 바란다”며 인사를 전했다.
사회노동위원 법상스님은 “다시는 외롭지 않은 곳에 왕생하시길 바란다”며 인사를 전했다.

1년 내내 굳게 닫혀 있던 추모의집의 문도 이날만큼은 개방됐다. 스님들과 위령제 참석자들은 유골이 모셔진 추모의집 내부 봉안당에 방문해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류금신 민중가수의 공연은 추모 분위기는 한층 고조시켰다.

무엇보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법적 혼인관계의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내야 했던 박노춘 씨의 사연과 이와 관련된 사후자기결정권(생전에 자신의 장례 방식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보장 등과 관련된 문제도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은 간절한 염불기도로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은 간절한 염불기도로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양한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스님들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기면서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 프로그램이 체계화되는 등 작은 변화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앞으로도 빈곤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확산시켜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파주=이성진 기자 sj0478@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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