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지난 여름에 첫 책을 냈다.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조선의 제18대왕 현종이 대대적인 불교탄압에 나서자 이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는 백곡스님의 상소문 간폐석교소를 글감으로 삼았다. 서문에는 불교라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각오했던 선지식에 대한 존경과 총무원장 스님 본인의 불교 수호에 대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책 덕분에 백곡 처능이란 법명을 처음 듣게 된 사람도 꽤 많을 터이다. 대다수에겐 그저 흘러간 인물이고 인기가 없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이는 그만큼 조선시대 불교와 스님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극장에서 내려진지 오래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수 350만 명이었는데 공식적으로 1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자와 평론가들의 평점은 괜찮았는데 유독 일반 관객들의 평점이 매우 박했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세종대왕은 성현의 대명사다. ‘나랏말싸미는 한글을 만든 주역이 알고 보니 세종대왕이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어느 스님이었다는 파격적 주장을 던진다. 결국 절대적 성역을 건드린 것이 화근이자 패착이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만약 신미대사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다면, 흥행 성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지나친 상상력이라 비판받는 이면에는, ‘숭유억불그야말로 불교가 씨가 마른 시대에 그처럼 천재적인 스님이 나올 수는 없다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곱씹게 된다.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끝내 묵묵히 견디고 버텨내는 자들의 몫이다. 여러 사료들을 보면 조선시대 불교가 대접은 못 받았을지언정 자포자기는 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의 뛰어난 고승들은 경전만이 아니라 사서삼경에 통달한 유학자였고 시문의 대가였다.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 뿐, 한글만이 아니라 나라의 문화융성에 기여할 자질은 충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선불교를 재조명해야 현재 한국불교의 역사성을 더욱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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