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스님
제정스님

10월13일은 남북 불교계가 협력해 만들어낸 큰 성과이자 상징인 금강산 신계사가 복원된지 12주년을 맞는 날이다. 2007년 복원 작업 당시 신계사 도감 소임을 맡으며 복원 불사에 앞장서온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스님이 이에 관련한 기고문을 보내와 전문을 싣는다. 

금강산이 그립다. 지금쯤 신계사 주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강수량이 많아 단풍이 곱디곱게 알록달록 할 것인데... 문필봉에서 보이는 비로봉과 세존봉의 단풍은 화장세계를 펼쳐내 보이는데, 나는 꿈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그 환상적인 풍광 때문에 어느 적부터인가 고인들은 금강산 가을을 아름답고 문학적인 이름으로 풍악산이라 했겠다.

벌써 신계사를 낙성한지도 12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내 나이 40대 초반의 온 정열을 바쳐 통일의 도량으로 꾸미고, 지난 시간들이 유수같이 흘러갔구나. 지금쯤 이었지! 가을 무렵 북측 사람들이 금강산에서 능이버섯을 따왔었지. 나는 그것을 받아 금강송 마른 가지로 가마솥에서 삶아 내었고, 남북의 사람들이 같이 둘러앉았다. 먹는데 남북이 따로 있었던가? 능이는 고추장에 찍어 먹고 그 국물에는 라면을 끓여 한 가족처럼 맛있게 먹던 기억들이 구수하게 다가오는 이 계절. 가을이면 더욱 그립다.

정치·군사적으로는 아직도 통일의 길은 멀어만 보인다. 하지만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만이라도 우리는 신계사에서 작은 통일을 했었다. 같이 먹었고,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 했었다. 남측 입장에서는 불교 성지를 복원하는 대작 불사였고, 북측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을 복원하는 대사명이였다.

발굴 작업을 하면서 남북 학자들이 둘러앉아 같이 역사를 해석했고, 목수들은 함께 대패질을 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긍했던 통일 현장이었다. 단청을 입히는 일은 잔손질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일하는 분들이 많이 필요로 했다. 특히 함경도에서 온 두 사람의 사투리는 지역적 특성이 잘 묻어나는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았다. 

어느 여름 몹시도 더운 날. 우리 모두는 기계 대패와 엔진 톱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온통 나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눈만 말똥말똥 했다.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된 모습으로 서로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냈었지. 모두 신계천에 가서 멱을 감기로. 자연역사경관 보존지역이라 계곡에 함부로 들어 갈 수 없었으나, 남북이 통일된 의견을 냈다. 관광객이 모두 온정리로 내려 간 다음에 물에 입수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서로 옷을 벗기를 주저하고 있을 즈음, 나부터 몸소 실천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원초적 상태로 자연스럽게 몸소 통일을 실천했던 그 때가 기억난다. 금강산의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계곡물은 온통 에메랄드빛인데, 우리는 모두 금강산 선녀처럼 멱을 감고 작업의 피로를 씻어 냈었다. 해방 이후 금강산 계곡에서 남북이 함께 목욕한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신계천이 동해로 흘러가는 멀지않은 어느 지점에 발연사가 있다. 나도 금강산에서 지내는 동안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는 없었다. 발연사는 진표 율사가 창건했으며, 대표적인 미륵도량으로 꼽힌다. 사진으로만 보는 발연사 홍예교는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 다리의 기초 부분인 장대석이 큰물에 유실됐다는 관리원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확인을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발연사에는 ‘진표율사장골탑비’와 바위에 글자를 새긴 각자들이 있다는데 중요한 기록자료 임에 틀림없다. 

미륵은 희망이다. 우리 땅에 미륵신앙을 널리 펼치신 진표율사는 금산사에서 출가하고 법주사를 거쳐 금강산 발연사에서 입적하셨다. 시대적 환경은 어렵다 할지라도 미륵부처님의 출현을 앙망하듯이 통일은 우리의 원력으로 앞당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연사도 다시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통일의 초석이 신계사 복원이었다면 한 단계 진전을 보는 것이 발연사의 복원이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금산사 주지를 지내셨고, 역사에 대한 안목 또한 깊으셔 발연사 복원에 남다른 원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 불교계에선 통일이 미륵부처님의 화현이시고 희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불교의 화쟁의 가르침과 총무원장 스님의 원력으로 남북문제가 원만해지고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시절인연이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불교신문3526호/2019년10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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