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주
차진주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글을 조금 쓴다. 아침을 깨우는 건 새소리와 산책 할 때에 바스락거리는 발걸음 소리다. 그리고 딩동! 때마침, 엄마의 포토 메일 한 장. 코스모스 한 송이였다. 아빠가 주신 거란다.

얼마 전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엄마가, 가을인데 왜 요즘은 코스모스가 안 보이느냐고 무심코 했던 말을 아빠가 기억하고 엄마 잠든 사이 머리맡에 가져다 두신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며칠 전에는 프랑스 화가의 전시회와 미국의 영화음악가의 공연을 다녀왔는데 관람객들 대부분이 가족들과 연인, 친구와 함께 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로에게 소중한 시간을 내는 일도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문득 부처님의 어린 시절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사촌 데바닷타가 백조를 잡으려 화살을 쏘아 잡았다.

백조를 가엽게 느낀 부처님은 백조의 상처를 돌봐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데바닷타가 백조를 가지려 하자 부처님은 백조와 함께 살 사람은 화살로 쏜 데바닷타가 아니라 사랑으로 돌봐준 부처님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그런 다음 백조를 자유롭게 놓아주셨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씨앗은 어쩌면 원래 그 자리에 늘 항상 이었는지 모른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이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부처님의 일화에서 사랑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은 소유나 이기적인 의도, 조종이나 집착이 아니라 이해심과 연민, 친절과 온유함, 따스함에 있는 것 같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참사랑인 것이다. 가을 노을을 바라본다. 나도 바람으로 하늘로 별로 강으로 물들어간다. 사랑도 자연과 생명의 순환처럼 변하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지금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 이 순간도 모든 우주가 사랑 속에 있다. 숲 속의 바람과 새소리가 들려온다. 자유로 가는 그 길목에 두 손을 함께 잡고 미소를 그리면서.

[불교신문3526호/2019년10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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