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동안거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결사, 역사와 그 정신 살펴보니…


백련, 수선, 봉암사 결사 등
불교가 위기 직면할 때마다
정법구현과 수행에 매진하는
‘승가공동체 출현’ 난관 극복

불교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부처님 법대로’를 내걸고 정법(正法)에 의지하고 수행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찬이슬과 비바람을 맞는 고행(霜)으로 중생구제와 지혜증득이라는 수행자 본래 정신(月)을 회복하는데 생애를 바쳤던 수행자가 있었기에 불맥(佛脈)은 오늘도 면면히 흐른다. 사진은 부처님 법을 높이 세우는 굴산사지의 당간지주 모습. 김형주 기자
불교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부처님 법대로’를 내걸고 정법(正法)에 의지하고 수행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찬이슬과 비바람을 맞는 고행(霜)으로 중생구제와 지혜증득이라는 수행자 본래 정신(月)을 회복하는데 생애를 바쳤던 수행자가 있었기에 불맥(佛脈)은 오늘도 면면히 흐른다. 사진은 부처님 법을 높이 세우는 굴산사지의 당간지주 모습.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결사, 역사와 그 정신 살펴보니…

불교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를 정화(淨化)하는 결사(結社)를 통해 극복했다. 어쩌면 부처님의 상가(僧伽)도 그 성격을 놓고 보면 결사와 같다. 인도의 브라만이 타락하여 민중들의 외면을 받을 때 부처님이 이끄는 비구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과 함께 고행하며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귀하다는 가르침을 펴 실의에 빠진 인도민중은 물론 중인계급과 국왕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부처님은 사람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다는 결정론, 인과론을 부정하는 우연론, 보이지 않는 절대 타자에 운명을 맡기는 운명론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기 운명은 자기 스스로가 개척하며 누구나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정법(正法)이라고 한다. 정법에 의지하여 욕심을 버리고 청빈하게 살며 계를 지키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이들을 일러 비구(比丘)라고 부른다.

불교 위기는 비구가 그 본 뜻을 잃고 타락하며 낮은 자가 아닌 높은 자가 될 때 찾아왔다. 그래서 결사는 비구가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부처님 법대로’다. 인도에서 가장 강렬한 전면적 결사는 대승불교운동이다. 대승불교는 출가불교가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대중 구제를 소홀히 하는 데 대한 반성으로 시작되었다.

부처님 입멸 뒤 출가자들은 교리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에 매달려 불교 본래 정신인 중생구제, 대중성을 상실했다. 이에 불탑을 보호하며 신앙을 영위하던 재가자들이 새로운 신앙운동을 일으켰으니 바로 대승불교다. 이로써 승단은 출가 2부중에서 우바새 우바이까지 확대되는 혁명적 변화를 불러오고 고립되던 불교는 일거에 세계종교로 발돋움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최초의 결사는… 

인도에 이어 불교의 주요 전파지였던 중국에서 최초의 신앙결사는 동진(東晋)의 혜원(慧遠)이 주도한 백련결사다. 402년 여산 동림사의 아미타불상 앞에서 123명의 승속이 모여 서방정토 왕생을 기원하는 염불결사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이 시기 중국 전역은 전란에 휩싸여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고 삶은 도탄에 빠졌다. 불교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당시 불교는 외형은 엄청 커졌지만 수행자들은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권력과 손잡고 호의호식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혜원은 전란도 피하고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기 위해 여산 동림사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30년 넘게 지계청정한 수행생활과 염불수행에 매진했다. 혜원의 소식을 들은 전국의 불자들이 여산에 몰려들어 자연스럽게 수행공동체가 형성되었으니 후대에 이를 백련결사라 하며 이후 결사의 전범(典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불교사를 보더라도 결사 외에 향도(香徒)·매향(埋香)·보(寶)·계(契)·회(會)·사(社) 등 다양한 형태의 결사 신앙운동이 일어났다. 신라에서 가장 유명한 결사는 오대산 화엄결사다. 오대산 화엄결사는 이후 화엄교학을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실을 낳았다.

고려시대는 두 차례 중요한 결사운동이 일어났으니 지눌의 정혜결사와 요세의 백련결사다. 두 결사는 지나친 불사, 승단에 대한 과도한 혜택, 종파 분열, 정치세력과 유착 등 당시 불교계 타락상을 비판하며 부처님 법대로 살 것을 서원하며 출발했다. 이들은 모든 이익과 명예를 벗어던지고 산속에 들어가 철저하게 수행했다. 

구한말 경허선사가 호남 영남을 거쳐 가며 선원을 개설하고 수좌들과 참선 정진한 운동역시 결사의 한 형태다. 그 이전 결사가 한 사찰에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된 것과 양상은 다르지만 기존 타락한 불교, 희미해진 정법을 되살리고 철두철미한 수행에 매진한다는 점에서는 지눌의 수선결사와 다르지 않다. 

지눌의 수선결사, 경허의 선수행은 해방 후 1947년 봉암사 결사로 이어졌다. 봉암사 결사 역시 정법을 회복하고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되찾고자 했던 기존 결사정신을 계승했다. 한국불교는 조선 500년과 일제를 거치며 정체성을 상실했다. 무속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법은 퇴락하고 대처가 득세하는 말법(末法)의 어둠 속에 빠졌다.

이에 경허, 만공, 용성, 한암 등 간화선 거목의 수행 전통을 이은 성철 자운, 향곡, 도우, 보경, 월산, 혜암, 법전, 성수 우봉· 보문스님 등 20여명의 수좌들은 구산선문 중 한 곳이었던 문경 봉암사에 모여 청정 수행 가풍 회복의 기치를 들었다. ‘부처님 법대로’ 기치를 걸고 18개의 구체적 실천 방안인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내세웠다.

그 핵심 내용은 정법(正法) 구현, 자급자족, 솔선수범, 보시 거부, 근검절약, 참선 정진 생활화, 세속 배격이다. 낮은 곳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감내하며 오직 도를 구하는 데만 매진하며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출발과 공주규약 내용이 똑같다. 

 ‘상월선원’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

이처럼 불교는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부처님 본래 가르침, 비구 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모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전임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하여 수좌 스님들이 결의한 상월선원 천막법당 결사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동안거를 영남 지역선원에서 나기로 했다는 한 수좌 스님은 “몇 사람의 원력과 수행이 후대에 어떤 의미로 기록될 지 당대는 모른다. 다만 지금 ‘할 뿐’이다. 상월선원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원력을 세우고 걸음을 내딛기 때문”이라며 성원했다. 

[불교신문3526호/2019년10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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