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김양희

우수리스크의 여름은 비로 가득하고 벌판에는 야생화가 만발한다. 해가 드문드문 드는 들에 지천으로 핀 꽃은 청초한 빛깔을 뽐낸다. 8월 중순의 풀벌은 벌써 여름이 기울어 가을 냄새가 곳곳으로 번지고 있었다. 발해의 유적지 발해성터를 찾아 우수리스크에 다녀온 것은 지난여름이다.

그곳은 작은 토성과 발굴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풀벌이며 지금도 주변에서 발해시대 기와조각이 발견되곤 한다. 수이푼 강이 자연 해자로 휘돌아 나가는 성터는 아득히 먼 산줄기가 산성으로 외성을 이룬다. 외성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강강술래를 추듯 둥그렇게 이어진다. 비가 많은 연해주는 오월부터 해가 나온 날이 며칠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날도 곳곳이 물에 잠겨 발해성터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발해성터로 가기 전,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고려인들과 대담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만남은 2층 한 공간을 다 차지하는 타원형 테이블에서 이루어졌다. 서로 모습은 비슷한데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질문도 대답도 판에 박은 듯 오가며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통역을 해 주어야 하니 기대하던 것만큼 정담을 나눌 수가 없었다.

이때 누군가 아리랑 노래를 부르자는 요청을 했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창을 했다. 역시 아리랑은 한민족의 끈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에 눈물이 흐르고 한편 미소도 번졌다. 우수리스크 고려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인터넷으로 찾아본 자료가 전부였다. 조국을 떠난 그들은 지난한 삶의 연속이었다.

한 곳에 발붙여 적응하려고 하면 떼어내고 또 살만하면 떼어내어 황무지로 강제이주 시켰다.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한 그들은 우수리스크에 3~5세가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들에게 아리랑은 힘이며, 위안이며, 그리움이며, 흥이다. 노래로 눈물을 훔치며 뚜벅뚜벅 오늘까지 걸어왔다. 

대담 자리를 마치며 나는 고려인 여성의 손을 잡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모습뿐 아니라 잠깐 들은 그의 삶이 고생이라기보다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러자 러시아어만 구사하던 그의 입에서 “곱소!”라는 우리말이 터져 나왔다. 귀가 번쩍 열렸다. 얼마나 반갑고 정겹던지. 그것도 타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모를 거라고 단정 지은 고려인에게서 들었으니.

‘곱소’는 그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했다. 할머니 주머니에서 손녀 주머니로 옮겨진 그 말은 잃어버리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없어도 기억하는 말이었다. 요즘, 말이 많이 변하여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하면 알아듣지 못할까 봐 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곱다며 부둥켜안았다.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그에게서 나온 ‘곱다’는 말이 얼마나 곱던지. 내가 우수리스크에서 가지고 온 말 ‘곱소!’ 발해 성터로 가는 길에서 곱게 핀 야생화를 보며 고려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도 야생화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꽃은 풀 속, 풀 위로 얼굴을 내밀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또 보이지 않은 곳에 핀 꽃, 길옆에 바짝 붙어 피어서 손이 탄 꽃, 소의 콧김을 쐬는 꽃 등 다양한 삶을 피워내고 있었다. 야생화에 이끌려 한참을 가다보니 멀리 지평선이 보였다. 지평선 안, 끝도 없이 드넓은 땅은 바람을 불러들이고 비를 받고 햇볕을 모아 풀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는 풀벌이다. 거기에 소와 말이 와 풀을 뜯고 꽃술을 핥는다.

어쩌면 고려인은 야생화보다 그 벌판의 기상을 닮은 것이 아닐까? 밟아버리고 뜯어버려도 다시 봄이 오면 당차게 풀을 키우고 고운 꽃을 피워내는 풀벌을.

[불교신문3524호/2019년10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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