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토론대회 현장, 치열한 논쟁…‘공부’ 점검

호국불교와 계율 상존 가능?
예선 통과 4팀 준결승 ‘격돌’
의견 교차하며 ‘치열한 토론’

지난 5일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제3회 해인사승가대학 토론대회' 결승전.
10월5일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제3회 해인사승가대학 토론대회' 결승전.

추분이 지나가고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10월 5일 오후 6시 30분.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현응스님) 구광루(九光樓) 대강의실에 스님과 불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범종과 법고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경내에 어둠이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날 구광루 대강의실에서는 해인사승가대학(학장 무애스님)이 주최한 ‘성안스님배 제3회 해인사승가대학 토론대회’ 준결승과 결승이 펼쳐졌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진행된 토론대회는 지난 하안거부터 5주간 12팀이 치열한 예선을 거쳐 4팀이 자웅을 겨뤘다. 준결승에는 2인 1조로 구성된 으리으리, 백팔배, 사시특식, 징검다리 팀이 올랐다.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토론대회 입재식. 학인스님과 후원회원뿐 아니라 해인사 어른스님들도 다수 참석했다.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토론대회 입재식. 학인스님과 후원회원뿐 아니라 해인사 어른스님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번 토론대회의 주제는 ‘호국불교는 계율과 상존 가능하다(찬성, 반대) - 부제 : 불교의 전쟁 참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이다. 계율을 지켜야 하는 스님들 입장에서 전쟁 참여는 상충할 수밖에 없다. 과연 학인 스님들이 어떤 입장을 전개할지 토론 전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해인사승가대 학감 보일스님은 토론 주제에 대해 “계율을 지키려면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의 전쟁 상황에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면서 “학인들이 자기 의견을 교차하며 토론하는 가운데 지적 역량이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먼저 준결승이 연이어 진행됐다. 치열한 예선을 거친 팀들답게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졌다. 기조발언에 해당하는 입론(立論)과 마무리 발언이 각각 2분씩 주어지고, 팀별로 3분간 2회씩 주도권을 갖고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계율이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화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이 불살생계입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계율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 거네요?” “아닙니다.” “전쟁에 참여한다고 꼭 살생을 하게 되는가요?”
 

심사위원장 여연스님이 우승을 차지한 백팔배팀의 성일스님과 일항스님에게 시상하고 있다.
심사위원장 여연스님이 우승을 차지한 백팔배팀의 성일스님과 일항스님에게 시상하고 있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토론을 지켜보는 방청석 열기도 함께 달아올랐다. 때로는 박수로, 때로는 웃음으로 공감을 표시하며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학인스님들은 예선부터 결승까지 매번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바꿔가며 토론을 벌였다. 줄곧 한 쪽 입장만 고수하지 않고, 상반된 견해의 근거를 제시하는 형식으로 진행돼 흥미를 더했다.

사회를 맡은 견성스님이 시간을 두부 자르듯 적용했다. 토론자들의 촌철살인이 이어졌다. 유머를 곁들인 공격은 양념이었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계율을 등한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출가자에게 호국불교 참여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계율은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바로 앞에서 무고한 양민이 목숨을 잃는데 계율을 지킨다고 모른척해야 하나요.”
 

토론대회 시상이 끝난 후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토론대회 시상이 끝난 후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성일·일항스님 백팔배팀 우승
‘해인사승가대학 백서’선보여
후원회 동참 장학금 등 전달

승패는 심사위원들의 손에 달렸다. 해인사승가대총동문회장 여연스님, 해인사 총무국장 진각스님, 율주 경성스님, 율학승가대학원장 서봉스님, 승가대학장 무애스님이 심사를 맡았다. 심사 기준은 입론, 질의응답, 협동능력, 시간준수, 마무리 발언 등 분야별 20점으로 총 100점 만점이다.

이날 엄격한 심사 결과 △1등 가전연상 백팔배(성일·일항 스님) △2등 부루나상 징검다리 (금강·만경 스님) △공동 3위 용수상 사시특식 (금후·진원 스님), 마명상 으리으리(승목·설호 스님) 팀이 뽑혔다.

우승(가전연상)을 차지한 백팔배 팀의 성일스님은 “하안거 동안 교과 공부와 소임을 보면서 토론을 준비하기 쉽지 않았다”며 “좋은 결과가 나오고 도반들과 추억도 쌓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같은 팀의 일항스님은“윗반 스님 덕분에 덩달아 우승한 것 같아 부끄럽지만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행 정진하는데 토론대회가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성일스님과 일항스님은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기회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불교의 중요한 가치인 중도(中道)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대회를 통해 중도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체험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공부하는 좋은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학인스님들이 학장 무애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고마음을 표했다.
학인스님들이 학장 무애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고마음을 표했다.

해인사승가대학장 무애스님은 “올해로 세 번째인 토론대회는 현대의 가장 뜨겁고 비중 있는 주제를 선정해 학인들의 지혜를 겨루는 장”이라면서 “그동안 강의실에서 배웠던 불교의 자량(資糧)을 바탕으로 첨예한 장점에 대해 불꽃 튀는 지적 담금질의 현장”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무애스님은 “토론대회는 창과 칼이 없는 진검승부”라면서 “잔치에 여러분을 많이 모셨는데, 잔치가 싱거웠는지 조금은 먹을 만큼 짭짤했는지 모르겠다”고 미소 지었다.

1회부터 3회까지 토론대회를 모두 지켜 본 최원철 해인사승가대학후원회장은 “찬성과 반대 논리를 갖고 토론에 임하는 스님들을 보고 연구도 많이 하고 고민도 절실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자리를 같이한 후원회원들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날 해인사승가대후원회는 학인스님들에게 노트북 8대와 장학금 300만원을 보시했다.
 

최원철 해인사승가대후원회장이 후원회원들이 마련한 장학금을 학장 무애스님에게 전달했다.
최원철 해인사승가대후원회장이 후원회원들이 마련한 장학금을 학장 무애스님에게 전달했다.

내년 2월에 임기를 마칠 예정인 학장 무애스님의 재임 시절 활동을 담은 <해인사승가대학 백서>도 이날 선보였다. 학인스님들이 학장 스님에게 고마움을 담은 꽃다발을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여 박수와 웃음이 구광루에 가득했다.

해인사승가대학 토론대회는 지난 2016년 조계종 교육원이 주최한 제1회 전국학인 토론대회에서 최우수상·우수상 수상의 성과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보존국장을 역임하다 입적한 성안스님 유족과 제39회 해인승가대 동문들이 조성한 장학기금으로 토론대회를 열고 있다.
 

이날 토론대회에는 해인사승가대학후원회원 50여 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토론대회에는 해인사승가대학후원회원 50여 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현대 한국사회에서 수행 포교 목적에 적합한 전통은 선불교 전통인가 정토불교인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불자 인구 격감 원인은 승가 공동체 내부의 문제인가, 외부의 문제인가(2017년) △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는가. 현대 한국불교의 기복적 요소는 바람직한가(2018년)를 주제로 토론대회를 진행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이 가야산을 휘감고 내려왔지만 해인사 구광루에서 펼쳐진 ‘칼과 창이 없는 진검승부’의 열기를 누구러뜨리지는 못했다.

해인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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