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34> 4념처-신념주(身念住)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34> 4념처-신념주(身念住)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19.10.04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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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몸’을 갈고 닦고 채우는가

자기 몸 안락하게 하는 것은
업을 더 강하게 일으키는 셈
번뇌를 만드는 가장 큰 원수
등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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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심관(五停心觀)을 통하여 대치(大治)되는 번뇌를 잠시 가라앉혀 마음의 안정을 얻은 후에, 4념처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관찰함으로써, 보아서(darzana) 버려지는(heya) 번뇌인 견혹(見惑 또는 見所斷, darzanaheya)을 없앨 수 있다. 탐욕, 성냄 등과 같은 본능적인 감정은 앞에서 설명한 5가지 대치되는 관법을 통하여 가라앉혔지만, 잘못된 견해와 생각 등의 견혹을 없애기 위해서는 4념처의 자상과 공상을 관하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몸(身)과 마음(心)이다. 몸은 느낌(受)을 먹이로 살아가고, 마음은 생각(法)을 먹이로 하여 살아가며 집착한다. 결국은 4념처를 관하는 이유는 나를 분해해서 보는 것이고, 인간의 번뇌가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이라면, 심신(心身)은 나(我), 수법(受法)은 나의 것(我所)이 된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오해는 유신견(有身見), 이들의 발생에 대한 무지는 변집견(邊執見)이고, 이들을 집착하여 즐거움이라 보면 사견(邪見), 이러한 견해들을 집착하면 견취가 된다. 

결국 이 다섯 가지 오해를 버리는 것은 4념처인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발생한다. 몸의 역겨움을 관찰함으로써 깨끗함이라는 착각을 극복하고, 느낌의 본질인 괴로움을 관찰함으로써 기쁨이라는 착각을 극복한다. 마음은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영원함이라는 착각을, 영혼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영혼이라는 착각을 극복한다. 관법을 처음 시작할 때는 4가지를 각각 따로 수행하고, 이를 개별적 명상(自相)이라고 부른다.

후에 관의 힘이 깊어지면 일체 유위법의 무상함을 관하고, 일체 유루법의 괴로운 성질, 일체법의 공성과 무아성을 관하는 것을 통합된 명상(共相)이라고 한다. 이처럼 소욕지족을 통하여 지나친 욕망을 다스리고, 오정심관을 통해 번뇌를 가라앉혀, 4념처의 자상과 공상을 익히는 것까지를 3현위(賢位) 또는 자량위(資糧位)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바쁘게 살아간다. 이 몸을 갈고 닦고 채워져야 될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업을 더 강하게 일으키고, 번뇌를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원수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자량위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내가 이 몸을 위해서 사느냐, 내가 이 몸을 중생들을 위한 도구로 사느냐이다. 후자는 자량위가 되고, 전자는 업을 쌓는 길이 된다.

신념처는 몸에 대한 관찰이고, 이 몸은 음식에 의해서 길러지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좋은 음식을 보고 다시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집착과 싫은 음식을 보고 다시는 그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진심은 바른 신념처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념처의 첫째는 음식에 대해서 탐심과 진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고, 마르거나 살찌우기 위함 또는 잘생겨져야지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단지 법을 실천하고 법을 깨닫기 위해서 이 음식을 먹는 것이 바른 생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둘째는 몸이라는 것이 깨끗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얼마나 부정한 것인지를 관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몸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32가지의 부정한 것들로 모여져 있다. 머리위에서 발끝까지 몸의 껍질을 벗겨내면 몸은 붉은 피와 붉은 피로 이루어진 살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시 몸의 살을 벗겨내면 뼈들만 주렁주렁 달려 있다. 다시 몸의 뼈가 가루가 되면 몸의 골수만 남아있다.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만일 객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다 좋아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몸을 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을 사마타의 신념주(身念住)라 한다. 

[불교신문3523호/2019년10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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