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이정우

Q   법당에 들어가 보시를 하려하면 ‘불전함’, ‘복전함’혹은 ‘보시함’이라고 쓰여 있는데 왜 이런 이름이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

복전함은 복밭 가꾸는 보시행
실천 덕목 이해, 발전시킨 흔적
보시함도 뛰어난 불교적 명칭


A   법당에 들어가면 불자들은 여러 가지 보시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부처님 앞에 촛불을 켤 수 있도록 초를 보시할 수 있고 향을 피울 수 있도록 향도 보시할 수 있습니다. 꽃도 올려 보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청정수도 올릴 수 있습니다. 깊은 명상의 기쁨을 상징하는 쌀도, 깨달음의 열매를 상징하는 과일도 보시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초를 꽂을 수 있도록 촛대도, 불자들이 절을 할 수 있도록 방석도, 목탁도, 심지어 촛불을 켤 수 있도록 성냥이나 라이터 보시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법당에는, 더 나아가 절에서는 많은 불교용품과 생활용품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법당과 절을 운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는 절에서 필요한 여러 용품들을 각 품목별로 보시를 하곤 했습니다. 깊은 산속의 절이라도 직접 농사지은 쌀과 곡물을 이고 지고 가서 불단에 보시하였고 초나 향, 성냥도 직접 구입하여 부처님 전에 올렸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화폐유통이 활성화 되자 이 모든 물품들을 절을 방문하는 불자들이 직접 구입하여 들고 다니는 것보다 화폐를 직접 보시하는 것이 절에서나 불자들에게나 더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절에서 필요한 용품들을 필요에 맞게 구입하게끔 현금으로 보시하는 문화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금을 초나 향처럼 불단에 그냥 올리자 그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금보시를 보다 품위 있고 성스럽게 할 수 있도록 ‘불전함(佛錢函)’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없던 불전함이 생기다보니 이 명칭이 좀 어색했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처님 전에 아주 다양한 용품들을 수요에 따라 구입하기 용이하도록 현금을 보시하는데, 이 명칭으로 하자면 현금(錢) 그 자체가 독립된 보시물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지만 불교적 정서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불전함 보다는 ‘복전함(福田函)’이라는 보다 불교적이며 함의적인 명칭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복의 밭을 가꾸는 보시행’라는 의미입니다. 폭넓게 ‘보시함(布施函)’이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하게 되었는데 복전함과 더불어 매우 뛰어난 불교적 명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시대의 발전에 따라 불전함, 복전함, 보시함이 생겨났고, 그 차이는 보시(베풂, 나눔)라는 불자들의 실천덕목을 보다 깊게 이해시키기고 실천하도록 개선발전 시킨 명칭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신문3523호/2019년10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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