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의 고승전] <39> 대형당 지원스님
[이진두의 고승전] <39> 대형당 지원스님
  • 이진두 논설위원
  • 승인 2019.10.04 2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심으로 신심 굳건히 하고 큰 원력 지니고 살아라”

보림사 중수 평생 주석하며
비구니 금련회 기숙사 마련
선방 법당 갖춘 대찰로 중창

중앙승가대 동국대 교육불사
군포교 모금활동 적극 참여
불법홍포 인재양성에 온 힘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 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일깨운 지원스님. 몸소 당신 일생토록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은 2007년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 품서식에서 촬영한 스님.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 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일깨운 지원스님. 몸소 당신 일생토록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은 2007년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 품서식에서 촬영한 스님.

대형당(大亨堂) 지원(知元, 1931~ 2008)스님은 대중외호와 포교원력으로 일생을 보낸 어른이다.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 일이라면 자신의 일보다 먼저 생각하는 공심(公心)으로 살았다. 굳건한 신심을 바탕으로 크나 큰 원력을 지니고 불법홍포에 온 힘을 다했다.

가람을 중수 수호하여 수행환경을 여법하게 일구고 인재양성에 힘을 다해 후학의 정진과 학구열을 불태우는데 적극 후원했다. 지원스님은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보림사에 평생 주석했다. 

보림사는 1950년 12월, 한국전쟁으로 인해 청도 운문사 청신암(靑神庵)에 머물던 지성(志成)스님이 고향인 부산에 와서 건립한 사찰이다. 지성스님은 윤만공화 임여리심 등 100여 명의 신도와 힘을 모아 보림사를 창건했다. 지원스님은 속가 고모이자 은사인 지성스님을 따라 보림사에 왔다.

지원스님이 27세 되던 해 은사인 지성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지원스님은 1970년 6월부터 절을 중수하기 시작했다. 지원스님은 1980년 초반부터 어린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었다. 

큰스님들을 초빙하여 경전 강설 법석도 마련했다. 지원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절에서 자란 스님들이 학교에 가면 속퇴(俗退)한다는 당시 스님들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상좌들 중 누구라도 공부하기를 원하면 학교에 보냈다. 1981년에는 강원을 졸업하지 않은 상좌를 대학에 보냈고 강원을 졸업한 상좌를 일본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당신 상좌뿐만 아니라 동국대에 다니는 스님들 모임인 석림회(釋林會)의 스님들이 화주(化主)하러 오면 선선히 지원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설립되고 비구니 스님들이 기숙사가 없어 각자 자취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비구니 기숙사 건립에 적극 나섰다. 

부산의 비구니모임인 금련회 회장을 맡고 있던 스님은 회원들의 뜻을 모았다. 당시 사과밭이던 농장을 사서 아파트 형식의 건물을 지어 비구니 기숙사로 사용하게 했다. 지금의 금련사다. 그 후 금련사를 재건축하여 선방과 법당을 갖춘 큰 사찰로 만들어 참선 수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스님은 보림사 주지 소임을 살면서도 금련선원 스님들을 위해 해마다 동·하안거 해제비와 공양, 전기세, 수도세 등을 당신 자비로 충당했다. 불교텔레비전과 불교방송, 군포교 등의 모금활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2005년에는 태풍 매미로 인해 비가 새고 기울어진 보림사를 중수해 번듯한 도량으로 거듭나게 했다. 지원스님은 열반하기 전에 1억원을 중앙승가대학 총장 종범스님에게 기부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 사실을 익명으로 해달라고 했다. 물론 신문이나 방송에도 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스님 열반 후 문도들은 스님의 49재 때 들어온 돈을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비구니 강원 4곳과 10곳의 비구니 선방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으로 회향했다. 
 

➲ 종단 첫 ‘명사’ 법계 수지

내 일보다 먼저 대중을 생각 
내 절 내 상좌 챙기기 앞서 
수행자 챙기는 포용력 칭송

범어사 초유 다비장 ‘허용’

지원스님은 1931년(신미년) 음력 11월4일 부산 동래에서 신우언(辛佑彦) 거사와 박무궁화 보살의 1남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4살 되던 해 스님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청도 운문사 청신암에 갔다. 거기서 삭발 수행 중이던 고모인 지성스님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삭발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스님은 노스님인 성우(性佑)스님, 은사인 지성(志成)스님의 뒤를 이어 신(辛)씨 집안의 3대에 이르는 스님이 되었다. 1948년 3월 스님 나이 17세 되던 해 운문사에서 경하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55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구족계를 받아 지녔다.

운문사 강원을 졸업(제1회)한 스님은 1965년 범어사 대성암 등에서 수선 안거했다. 스님은 보림사 주지를 비롯하여 1976년 조직된 부산 비구니회 금련회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1984(5회)~1998년(18회) 단일계단 수계산림(비구니 사미니) 니(尼)화상 갈마아사리를 역임했고 1988~1989년 제 9, 10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했다. 

1950년 부산지역 비구니 모임인 금련회가 주축이 되어 건립한 경주 금련사 주지와 부산 보림사 회주를 맡아 후학들을 지도해왔다. 

2004~2005년 단일계단 수계산림의 니(尼)전계화상을 역임, 2007년 10월22일 종단 사상 처음으로 명사(明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이날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종정 법전스님으로부터 명사 법계를 품수한 스님은 지원스님을 포함해 모두 7명이다.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는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한다. 

경주 금련사와 부산 보림사의 모든 불사를 원만회향한 스님은 2008년 음력 9월7일 오전8시께 평생을 함께 한 도반들과 상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세수 78세 법랍 62년. 스님의 영결식은 양력 10월8일 오전 8시30분 보림사에서 다비식은 오전 11시30분 범어사 다비장에서 봉행됐다.

스님의 본찰인 범어사는 스님의 품계가 명사이며 불법홍포와 그동안의 업적을 존중해 다비장(茶毘場)을 열어주었다. 범어사가 지원스님에게 다비장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다. 그만큼 지원스님의 수행력과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데 평생을 바친 그 원력과 성취력을 크게 받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원스님 문도는 해마다 음력 9월6일 스승의 추모재를 봉행해 오고 있다. “초심으로 살아가라. 신심을 굳건히 하고 큰 원력을 지니고 살아라.”

지원스님은 늘상 후학에게 이렇듯 일러주었다. 당신은 ‘매일 아침 <금강경> 독송’을 한 평생 수행으로 삼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진했다. 불사에 바쁜 중에서도 그리했고 여행 할 때도 그리했다. 함께 방을 쓰는 상좌들은 새벽2시면 일어나는 스님 때문에 여행가서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 투덜거리기도 했단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스님이지만 남을 위해 베푸는 데는 조금도 인색해 하지 않은 스님이었다. 

은사의 그러한 보살정신 실현에 함께 사는 제자들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스님의 견고한 신심,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투철한 지계청정(持戒淸淨) 정신은 후학에게 큰 경책이 되고 있다. 나보다 내 일보다 먼저 대중을 생각하고 내 절 내 상좌 챙기기에 앞서 수행자를 챙기는 크나큰 마음 드넓은 포용력을 지닌 스님. 종단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임종 때까지도 변함이 없던 우리시대의 큰스승이었다.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출가수행자가 되어 부처님 법을 넓고 깊게 배우고 익혀 그 법을 널리 펴는데 내 한 몸 바치기”를 서원한 지원스님. 신심은 수행자의 버팀목이요 뿌리이다. 신심이 굳건하지 않으면 수행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출가수행자든 재가불자든 부처님 제자라면 신심을 제일로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 지원스님이다.

또한 스님은 수행자라면 원력을 크게 가지라고 했다. 굳건한 신심의 바탕에서 원력을 더하면 큰 성취를 이루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불자로 살면서 신심을 뿌리로 갖추고 신행생활을 하면서 원력을 크게 세우고 그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물러서지 않고 노력한다면 출가수행자든 재가불자든 그 자신의 일생은 얼마나 보람찬 것이겠는가라고 후학을 이끌었다.

불자로서 출가든 재가든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면 갈 길이 보인다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만큼 삶의 행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고구정녕 일깨운 지원스님. 당신은 후학에게 말로만 그리한 게 아니라 몸소 당신 일생토록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스님 가신지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후학들은 당신이 지금도 곁에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당신이 보여준 삶의 궤적과 당신의 법향이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기에 그러하리라. 훌륭한 스승은 제자를 잘 기르고 그런 큰 그늘에서 자란 제자는 스승을 더욱 큰 스승으로 만든다고 한 말을 곱씹어본다. 

※자료제공 : 부산 보림사 

[불교신문3523호/2019년10월5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