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스님

행자시절, 후원에서 주방세제로 쟁탈전을 벌이곤 했다. 안좋은 세제를 은사 스님은 되도록 쓰지 말라고 숨겨 두었고, 나를 비롯한 소임자들은 세제를 찾아 용이하게 설거지를 하려는 ‘경쟁’이었다. 세제를 쓰다가 발각되면 여지없이 법당에 가서 삼천배 참회절을 올려야 했다.

미련스럽게도 그 시절 나는 후원의 세제를 감춰두었다가 기름기 있는 그릇을 기분 좋게 씻었고, 들키면 삼천배 절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주위 환경도, 사람도 미래도 생각하지 못한 무지한 소치였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세제를 쓰기는 하지만 환경을 걱정하면서 의도적으로 쓰임새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날씨와 기온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청정하게 느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느낌이 지금은 확연히 다르고 겨울의 온도도 상승했음을 체감하면서 기후온난화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는 ‘기후위기와 미래 세대들의 반란’이라는 주제로 기후대책비상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었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평상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위기를 미래세대들인 청소년들이 경고했다는 것이 어쩌면 희망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 불교계는?

학인시절 읽었던 <대지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주도 중생도 한 마음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그 한마음의 조작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연적 요건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인간을 위협하는 요건이 되는 현실이 지구의 환경 아닌가.

환경운동의 상징이 된 스웨덴의 16세의 소녀 툰베리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미래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기성세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경고를 받고 우리 불교는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환경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신문3523호/2019년10월5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