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예술은 우주만물에 깃든 생명의 기운

집 앞에 신을 맞이하는 ‘코람’을 그리는 여인들. ⓒ김광부
집 앞에 신을 맞이하는 ‘코람’을 그리는 여인들. ⓒ김광부

‘노래와 춤’의 영화 

뮤지컬영화도 아닌데 뜬금없이 등장인물이 노래로 대사를 하고 춤까지 춘다면, 관객들은 의아해하며 영화의 작품성까지 의심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도에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뿐더러 춤과 노래가 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외면 받는 영화가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흥겨운 군무장면이 나올 때면 극장에서 특수조명을 틀어주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진풍경의 시절도 있었다. 

인도사람들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민족, 특히 자국영화만 즐기는 민족은 찾기 힘들 듯하다. 연간 10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고 하루 관람객 1500만 명에 자국영화 점유율이 95%를 넘어, 그들의 영화산업은 ‘볼리우드(Bollywood)’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인도영화의 중심도시인 봄베이(뭄바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이다. 또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첨가된 인도영화의 특성을 ‘마살라’ 영화라 부른다. 마살라는 향신료라는 뜻이니 노래와 춤이 양념처럼 잘 버무려진 해피엔딩의 영화를 말한다. 

대다수 인도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세 시간을 넘겨 휴식시간까지 두는 러닝타임 내내 고단한 현실을 잊고 행복을 충전한다. 윤회를 믿고 내세에 더 나은 카스트로 태어나길 소망하는 그들에게 영화는 앞으로 열릴 또 다른 생의 장면들일지 모른다. 이국의 낯선 문화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전통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이 바뀌기를 원하는 마음 또한 읽어보게 된다. 

영화에 깊이 빠져드는 데서도 잘 드러나듯이, 예술적 성향이 풍부한 인도사람들은 노래와 춤, 이야기와 그림, 장식과 판타지를 좋아한다. 그들의 예술이 신을 향한 데서 출발했고, 가장 위대한 신으로 섬기는 시바와 비슈누 또한 춤과 음악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신을 관통하는 역동적 에너지가 아득한 고래로부터 생성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창조-유지-파괴’를 상징하는 ‘브라흐마-비슈누-시바’가 삼신(三神)이자 하나인 신으로 귀결되어 우주원리를 나타내니, 종교성과 예술성은 우주만물에 깃든 생명의 기운이기도 하다. 
 

인도 국립박물관의 ‘나타라자’ 시바의 청동상.
인도 국립박물관의 ‘나타라자’ 시바의 청동상.

시바의 다마루, 한국의 장고

인도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 시바는, ‘파괴의 신’이라는 상징성을 지녀 무시무시한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고대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는 10개의 팔에 4개의 얼굴과 3개의 눈을 지녔고, 용의 독을 마셔 목이 검푸르다고 묘사했다. 시바는 모순된 특성을 지닌 복합적 존재지만 실제 조각과 그림으로 만나는 그는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신’이라는 표현에 가장 가깝다. 

그 가운데 춤의 왕 ‘나타라자’로 표현된 모습은 시바의 상징이라 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불꽃이 타오르는 둥근 우주 속에서, 네 개의 팔을 유연하게 펴고 접어 신비로운 손동작을 짓고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들어 올려 춤추는 모습은 조화와 변화가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이처럼 춤추는 시바의 오른손에는 늘 ‘다마루(damaru)’라는 악기가 들려 있어 범상치 않은 악기임을 짐작케 한다. 

다마루는 인도 탄트라불교를 수용한 티베트불교에서도 사용하는 의식용 법구로, 오랜 수련을 거친 라마승만이 연주할 수 있다. 인도와 티베트의 전통다마루는 작은 장고 모양에 몸체는 남녀 해골의 정수리부분을 맞붙이고 양옆은 가죽을 대어 만들며, 가운데 두 개의 추를 매달아 악기를 흔듦으로써 추가 북의 양면을 때려 소리를 낸다. 음과 양을 맞댄 몸체가 이원성의 합일을 상징하면서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주술과 영험을 지니게 된 셈이다. 

그런데 다마루와 같은 모습의 요고(腰鼓)ㆍ세요고(細腰鼓)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하여 주목된다. 집안현 오회분 4호묘에는 하늘을 나는 천녀가 목에 작은 요고를 걸고 양손으로 두드리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요고가 서역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이라 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면 장고가 요고를 대체하게 된다. 요고가 잘록한 허리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장고(杖鼓)는 채를 들고 두드리는 연주방식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의 대표악기인 장고가 인도 시바신의 다마루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북이나 장고의 양면에 암소와 수소 가죽을 쓴다는 담론 또한 다마루의 음양합일과 일맥상통하니,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축국(天竺國)과 한민족이 깊은 두드림의 울림 속에 서로 이어져있었던 셈이다.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는 ‘홀리축제’의 장면.ⓒ동양북스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는 ‘홀리축제’의 장면. ⓒ동양북스

일상이 예술인 사람들

그들의 예술성은 무대 위나 작가의 작품보다 서민들의 일상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수공예품을 척척 만들어내고 집과 공동체를 치장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담긴 미의식이 뛰어나, 만물에 대한 순수한 감각과 거침없는 표현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도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업이 곧 종교의식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놀라운 그들의 전통 가운데 하나는 매일 새롭게 신을 맞이하기 위해 대문 앞의 바닥에다 그림을 그리는 풍습이다. 이를 코람(Kolam)이라 부르는데 집안여성들이 색을 들인 쌀가루, 꽃가루, 모래 등으로 다채로운 문양과 꽃그림을 그려 신을 청하는 상징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신이 깃들기를, 그리고 신이 가족에게 안녕과 복을 내리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신과 소통하는 사인을 그리는 여인들. ‘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발을 디딜 받침’이라 여기는 그녀들의 마음이 참으로 곱고 신선하다. 

그런가하면 갠지스 강을 품은 바라나시는 수천 년의 고도(古都)답게 문화예술이 풍부하다. 이곳에선 예약 없이도 누구든 인도의 고전음악 ‘라가(Raga)’를 지척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강변의 골목마다 ‘라가연주’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작은 공연단이 관람객을 기다리니, 낮은 창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가 들리면 누구든 조용히 들어가 자유롭게 앉으면 된다. 두 개의 북을 두드리는 타악기 타블라, 낮은 지속음을 내는 현악기 탄푸라, 멜로디를 그려내는 건반악기 하모니움이 한 조를 이루어 연주하는 가운데 신에게 바치는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이다. 이토록 자유롭고 일상적인 공연과 관람이 또 있을까. 

특히 인도사람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무용에서도 자국 중심적이다. 기타를 가야금처럼 연주하거나, 바이올린을 켜는 방식을 자유롭게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어떤 악기든 자신들의 스타일로 녹여버리니 인도음악을 용광로에 비유함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예술분야 가운데서도 정적인 문학ㆍ미술에서는 서구와 활발히 교류하는 데 비해, 동적인 영화ㆍ음악ㆍ춤에서 유독 배타적이다. 이는 보다 직접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에 함께 공유해온 토착의 전승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신과 예술의 나라답게 인도의 축제 또한 풍성하고 다채롭다. 수많은 축제 가운데 인도력(印度曆)으로 마지막 달 보름에 행하는 봄맞이축제 홀리(Holi)와, 여덟 번째 달 초하루에 행하는 겨울맞이축제 디왈리(Diwali)를 꼽을 수 있다. 두 축제는 선이 악을 물리친 신화적 사건에서 기원하여, 이 날을 축복하는 뜻과 계절축제로서 특성을 두루 지녔다. 
 

말린 쇠똥으로 지붕을 만든 인도의 집.그림=구미래
말린 쇠똥으로 지붕을 만든 인도의 집. 그림=구미래

색의 축제, 빛의 축제

봄을 맞는 축제 홀리는, 서로에게 물감과 색 가루를 뿌리고 바르며 한바탕 ‘색(色)의 난장’을 벌이는 특색을 지녔다. 첫날 ‘작은 홀리’의 밤이 되면 화톳불을 피워 곡식을 불에 던지며 복을 빌고, 북ㆍ폭죽과 노래로 큰소리를 내며 활력에 찬 보름밤을 보낸다. 축제의 정점은 다음날로, 이날만은 카스트의 구분 없이 환희와 흥분 속에 색을 뿌리고 춤과 노래로 즐기는 것이다. 오후에는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쁨을 나눈다. 

홀리의 기원이 된 신화는 비슈누와 관련이 있다. 신이 되려는 악한 왕이 비슈누를 받드는 아들을 죽이려고 불타지 않는 능력을 지닌 누이에게 아들을 안고 불속에 앉게 했는데, 누이는 타서 재가 되고 아들은 살아남아 악을 물리치게 된 것이다. 이날 뒤집어쓴 물감을 씻어내고 불을 피우는 것은 모두 겨울의 묵은 때와 삿된 기운을 정화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디왈리는 겨울을 앞두고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이다. 홀리가 ‘색의 축제’였다면 디왈리는 ‘빛의 축제’로, 삭일(朔日)의 어두운 밤을 수많은 등불로 밝히게 된다. 비슈누의 화신 라마가 악마에게 납치된 부인 시타를 구해 돌아오자, 백성들이 등을 밝혀 환영한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축제 때 사람들은 비슈누의 부인이자 ‘부와 풍요의 여신’ 락슈미를 섬기며 복을 빈다. 이에 회칠과 대청소로 집안을 깨끗이 하고, 문과 복도에 발자국을 연속적으로 그려 락슈미의 방문을 나타낸다. 

빛의 축제답게 디왈리의 장관은 밤에 이루어진다. 락슈미를 환영하는 오색의 등과 초로 집안 곳곳을 장식하여, 마을 전체는 동화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마지막 날 형제들이 선물을 들고 누이 집을 방문하면 누이는 이마에 티카를 찍어주며 축원하는데, 이는 여신숭배의 연장선상에서 집안여성을 대우하는 풍습인 셈이다. 긴 우기 동안 습하고 오염된 집안을 깨끗이 하고 건조시키며 악한 기운과 해충을 물리치는 의미를 두루 지닌 축제이다. 

[불교신문3522호/2019년10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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