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스님이 보내온 삭발의 진정한 의미

법장스님

최근 여러 방송이나 신문에서 삭발이 큰 이슈이다. 출가인구는 줄었다는데 삭발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뉴스를 듣고 무슨 일인가 했다. 몇몇 정치인이나 기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대중들 앞에서 삭발을 하고 다시 그것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조롱하기까지 한다.

삭발이 그야말로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삭발을 하고, 삭발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삭발은 동·서양의 모든 종교에서 출가자와 세속인을 구별하기 위해 행해지는 중요한 의식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삭발의 원어는 ‘muṇḍanā’, 체발(剃髮), 낙발(落髪), 정발(浄髪)이라고도 한다. 출가자는 삭발을 함으로써 세속인과 구별돼 모든 행동에 있어서 세속적이고 부정한 행위를 멀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출가의식에 앞서 그동안 살아오며 생긴 인연과 욕심 등을 머리카락을 깎으며 함께 없앤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수계식을 하기 전에 삭발을 하고 세속의 옷이 아닌 염의(染衣)로 갈아입은 뒤에 계를 받고 출가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삭발은 속세에서 살며 욕심으로 만든 모든 것들을 스스로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종교적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법다운 의식이다.

그리고 중세의 로마 가톨릭(Catholic)에서는 사제가 출가를 할 때 불교의 삭발과 비슷한 의식을 했는데 이를 ‘Tonsure’라고 한다. 라틴어의 ‘Tonsura’에서 파생된 용어로 큰 가위라는 의미이다. 이 삭발의식도 사제를 세속인들과 구별하여 그들이 세속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가자로써 모든 미련 등을 잘라내고 가톨릭 사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겠다는 맹세를 나타내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이처럼 삭발은 일반인이 출가를 앞두고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며 만든 모든 인연이나 재산, 명예 등을 자신의 머리카락과 함께 없애고, 삭발을 마친 뒤부터는 철저히 출가자로써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서원의 의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출가자들이 그동안의 삶을 참회하고,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삭발이 최근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돼 버렸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에게 호소하거나 무리하게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삭발을 이용하고 있다. 마치 삭발이 정치적이고 투쟁적인 행위를 대표하는 것과 같이 퇴색돼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삭발을 저급한 행위와 같이 비판하고, 그들과는 무관한 삭발한 종교인의 사진을 마치 정치인의 사진인 것처럼 함부로 도용하며 무책임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과연 이들은 삭발의 참다운 의미를 알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인가.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청빈한 수행자로써 살아가겠다는 서원인 삭발이 이들로 인해 정반대의 의미가 돼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고 정치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악용되고 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을 보다 채우려고 하고, 누군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만을 주장하려는 이기적인 행위로 삭발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이 삭발을 하며 흘리는 눈물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도 새삼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참회의 눈물인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분노의 눈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는 삭발을 함으로써 교만을 없애고, 스스로 마음을 다 잡는다고 하며,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머리를 깎고 염의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을 없애는 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삭발은 출가의 맹세임과 동시에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없애는 수행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서 나오는 삭발은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교만함 그 자체가 돼 버렸다. 출가자의 삶은 아니더라도 이왕 삭발한 김에 잠시라도 조용히 산사에서 머물며 끓어오른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책임하고 가볍게 한 행동과 발언을 깊이 참회하며, 대중들이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수행을 하는 모습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불교신문3522호/2019년10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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