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화두 ‘한국불교’] <61> 백만원력결집불사와 願力(上) - 군승들의 원력과 결의
[함께 쓰는 화두 ‘한국불교’] <61> 백만원력결집불사와 願力(上) - 군승들의 원력과 결의
  • 박부영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9.09.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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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군승들이 백만원력 불사에 적극 나서는 까닭

교구에서 나서기 전부터
고참들부터 자발적 실천

후배들 만나 동참 독려
과거 볼수 없었던 모습
종단 정체성 강화 덕분
총무원장 스님이 지난 3월 계룡대를 방문해 법회를 봉행하는 모습. 육해공군 군승들은 백만원력결집 불사 동참 원력을 세우고 적극 나설 것을 결의하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총무원장 스님이 지난 3월 계룡대를 방문해 법회를 봉행하는 모습. 육해공군 군승들은 백만원력결집 불사 동참 원력을 세우고 적극 나설 것을 결의하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직 얼음바구니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군불교에서는 최근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종단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대해 성공을 적극 바라는 현역 군승 고참 선배들이다. 아직 군종교구 차원에서의 세부적인 계획이 완성되기도 전에 고참들부터 자발적으로 동참선언을 해놓고는 후배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위 글은 지난 6월 지용스님(육군학생군사학교 학림사 주지, 중령)이 불교신문에 쓴 칼럼 중 일부분이다. 희귀병을 앓는 환자를 돕기 위해 얼음물을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 챌린저처럼 군승들이 종단의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적극 동참한다는 내용이다.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적극 동참

종단이 추진하는 백만원력 결집불사에는 군승들의 염원인 계룡대 영외법당도 포함돼 있다. 백만원력결집불사는 종단이 미래를 준비하는 대작불사를 일컫는다. 대개 불사는 사찰이나 교구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관례다. 개별 사찰이나 교구가 아닌 총무원이 발벗고 나서고 전국 사찰과 신도들이 동참하여 종단 사업을 챙기는 종단불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 불교방송, 불교텔레비전 등 언론 방송 불사 정도다. 

반면 백만원력 결집불사는 그 내용이 다양하고 동참자도 사부대중 전체를 망라한다. 종단 역사상 이처럼 다양한 내용을 놓고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불사를 진행하기는 처음이다. 백만원력 결집불사는 100만 명의 불자가 매일 100원씩 모아 한국불교중흥의 디딤돌이 되자는 발원을 담고 있다. 목표대로 진행되면 매년 360억 원의 기금이 조성된다.

이를 통해 종단은 그간 못했던 대사회 활동과 10·27법난 기념관 건립 등 대작불사에 활용한다. 부처님 깨달음 성지인 ‘인도 부다가야 한국 사찰 건립’, 스님들의 안정적인 수행환경을 위한 ‘종단 요양원 및 요양병원 설립’, 청년포교 활성화를 위한 ‘계룡대 영외법당 불사’, 엎드린 상태로 발견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입석, 도심포교당 건립에 백만원력 결집불사를 통해 모은 돈을 사용한다. 

백만원력 불사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대중이 함께 힘을 합쳐 종단 전체 불사를 진행하는데 있다. 한국불교 불자수가 1천만이라고 하지만 사실 실체가 모호하다. 신자 의무 권리가 종단 차원에서 규정돼 있지만 일선 사찰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구 조사에 나오는 1000만명과 100만명이 되지 않는 종단 등록 신도현황이 현실을 반영한다.

무엇보다 종단 차원에서 사부대중 전체를 대상으로 공동불사를 추진한 전례가 없다. 대한민국이 함께 힘을 합쳐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며 태극기 깃발 아래서 조국애를 느끼는 것과 달리 종단은 조계종이라는 깃발아래 같은 꿈을 꾸고 함께 노력한 역사가 없다. 

단 한번 있었다. 조계종을 세울 때이다. 그 당시는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이후에는 각자의 사찰에서 혹은 토굴에서 ‘자기문제’를 푸느라 조계종이라는 공동체를 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만원력 결집불사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조계종도’이며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일깨우는 최초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백만원력 결집불사가 시작되면서 눈길을 끈 움직임이 있었다. 군승들이다. 불사 중에 계룡대 영외법당 건립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군승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했다. 이들은 모두 영관급 고참들이었다. 최고참 법사부터 나서 불사 동참을 결의했다. 군승이 종단불사를 놓고 공사(公事)를 열고 동참을 결의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다. 최초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용스님은 이 상황을 불교신문 칼럼에서 언급했다. 

“특히 군승 최선임인 정우 법사님(육군 대령)은 군승과 군법당 안에서 자체적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같은 동참확산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1호가 본인 자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 해, 공군을 막론하고 많은 군법사들이 개별적으로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다. 독특한 사실은 군불교 안에서 결사에 대한 홍보나 추진계획이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라는 점이다.”

이정우 법사는 군종장교 최고 계급인 대령으로 군승 최고참이다. 최고참 법사가 나서 분위기를 잡고 결의를 다지면서 많은 군승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종단불사에 군승들이 적극 나선 것은 우선 이들의 숙원사업이 포함돼 있어서다. 계룡대 영외법당은 10여년 전 초대 군종교구장 일면스님 재직 때부터 추진됐었다. 계룡대는 육해공군 3군 사령부가 함께 있는 국군의 심장부다. 각 종교 교당도 영내에 자리하고 있다. 불교도 계룡대 안에 호국사가 있다.

그러나 국군 사령부가 있는 계룡대는 출입이 까다롭고 장군이 즐비해 장병들이나 낮은 계급의 불자들은 다른 법당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독교 천주교는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영외에 교육관 명목으로 건물을 지어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계룡대 영외 종교시설은 또 계룡시의 도심포교당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외법당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일면스님 교구장 시절 부지를 물색하고 10억원의 예산까지 마련했었다. 그러나 불사를 추진하던 교구장과 주지가 교체되고 논산훈련소 법당 신축이 더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면서 미뤄졌다. 논산훈련소 불사가 끝난 뒤부터 다시 추진돼 부지를 선정하고 국방부 예산도 편성된 상태다. 

올 초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계룡대를 방문해 상황을 보고 받고 종단의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포함되면서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군승들이 백만원력 결집불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미래 한국불교 준비에 감동

그러나 군승들이 계룡대 영외법당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그 전의 군승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들은 종단의 백만원력 결집불사 자체를 반기고 도우려 한다. 

한 중령법사는 “계룡대 영외법당은 종단의 백만원력 결집에 포함되기 전부터 군종교구 차원에서 추진해왔다. 우리 자체 힘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우리는 미래 한국불교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목적 사업, 즉 병원 건립, 부처님 성도지의 한국사찰 건립, 경주 불상 세우기 등을 종단이 원력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에 감동했으며 군승과 군법당도 종단의 일원으로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동참한다”고 말했다. 

고참군승들이 분위기 이끌어

군승들이 종단불사에 적극 관심 갖고 나선 또 다른 이유는 이처럼 군승들의 종단 소속감이 강해진데서 찾을 수 있다. 군종교구가 출범하기 전 군승단 시절에는 종단 따로 군포교 따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계가 멀었다. 동국대불교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해서 졸업 후 수계만 받고 군에 파견됐던 과거에는 종단 소속감이 약했다. 

자신의 상좌가 군승으로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종단의 한 중진 스님은 “내 상좌가 군에 있었다는데 찾아온 적도 없고 나도 이름도 모른다”고 말했다. 종단과 소원했던 관계는 군승단이 조계종 군종교구로 전환되면서 회복됐다. 군법당에는 종정예하 교시가 걸리고 종단 중진 스님 중에서 교구장이 선임됐다. 

그러다 2009년 현역 군승의 결혼을 불허하면서 군과 종단은 일체가 됐다. 10년이 흐른 지금 일부 최고참 군승을 빼고 대부분이 독신 비구승일 정도로 군종교구와 종단은 일체감을 형성했다. 이같은 분위기가 종단불사에 적극 나선 배경이다. 

세 번째는 일부 고참 군승들의 원력(願力)이다. 백만원력 결집불사 동참을 이끈 핵심 인물은 현재 호국 원광사 주지 보운 김종봉 법사다. 중령으로 최고참급인 보운법사는 종단 소속감과 애정이 남다르며 남들이 꺼려하는 불사도 발벗고 나서 후배들로부터 ‘원력보살’로 불린다. 1군 사령부 법웅사 주지로 재직하면서 불교대학을 개설하고 종단인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일은 유명하다.

법웅사는 군법당이면서 영외에 있고 규모도 커 원주시내 중심 도량이다. 군불자 외에 일반인들도 많다. 보운법사는 불교대학을 개설해 신도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도들의 요구에 따라 포교사 고시 응시가 가능한 종단대학으로 등록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몇 가지 규정에 걸려 등록을 받지 못했다. 

문중 일에도 적극 참여해 문도들의 사랑이 남다르다. 논산훈련소 주지 법사 시절 법당 신축의 필요성을 각계에 호소하며 그 주춧돌을 놓았다. 법당 완성은 후임 법사가 했지만 그 시작은 보운법사가 열었다. 군종교구 총무국장인 보운법사는 계룡대 영외법당 신축이 백만원력 결집불사 대상에 포함되자 교구 차원에서 동참을 결의하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보운법사와 함께 후배 군승들이 힘을 합쳤다. 불교신문 칼럼을 통해 불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동참을 호소하는 지용스님을 비롯 육해공군 고참 군승들이 적극 나서고 뒷받침한다. 군종교구 차원에서 불사에 동참하고 교구 소임자 스님과 군승들이 의무적으로 100구좌씩 책임지기로 한 것도 군승들의 자발적 결의에 따른 결과다. 이처럼 군승들의 종단과 일체감, 종단 불사에 대한 적극적 태도, 일부 군승들의 원력이 전에 없는 종단 차원 불사에 군승들이 발벗고 나서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발걸음은 더디다. 백만원력 결집불사가 당간지주를 높이 세울 때만 해도 거침없었던 원력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간다. 무엇이 이들을 절망케 하는가? 
 

[불교신문3521호/2019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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