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주제 ‘외서(外書)’ 잘 팔리는 이유는?

교계 출판사 발간 단행본
30% 이상은 명상 관련 번역서
‘포교’란 명분 ‘매출’이란 실리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콘텐츠

상대적으로 빈약한
‘내국인’ 명상전문가 반증
명상 원하는 이들에게
선방 문 활짝 열어야

 

명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명상서적의 출간도 활성화되고 있다. 사진은 올해 발간된 명상을 주제로 한 주요 번역서들.
명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명상서적의 출간도 활성화되고 있다. 사진은 올해 발간된 명상을 주제로 한 주요 번역서들.

사람들이 책을 좀처럼 안 읽는다 안 읽는다 해도 새 책들은 꾸준히 나온다. 만성적 불황 속에서도 불교계 출판사들 역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양서를 내겠다는 원력을 잃지 않고 있다. 최근 유독 눈에 띄는 건 명상서적의 지속적인 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명상을 주제로 외국인 필자가 쓴 저서에 대한 번역본이 뜨고 있다. 출판업계에선 흔히 ‘외서(外書)’라 부른다. 불광출판사와 담앤북스 등 불교계 주요 출판사의 경우 매년 발간하는 단행본 가운데 30~40%는 이른바 ‘명상 외서’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아 탐구’나 ‘스트레스 완화’ 등의 목적으로 명상을 실제로 하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명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서적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많아졌다. 교계 출판인들이 명상 외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이유는 불서(佛書)를 내는 첫째 목적인 포교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명상이 불교에서 출발한 만큼, 명상에 친숙해진 사람들에게 불교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그렇다. 쉽게 말해 웬만해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상이 급격하게 인기를 끄는 덕분에 손익분기점을 그런대로 맞출 수 있다. 좋아하는 명상전문가가 책을 내면 무조건 사보는 ‘매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해외 판권 구매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도 영세한 교계 출판사들에게는 매력적이다. 결국 세계적으로 검증된 명상가들의 책은 ‘전법’이란 명분과 ‘매출’이란 실리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콘텐츠다. 티베트 명상 번역서를 주로 발행하는 오세룡 담앤북스 대표는 “교계에는 그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티베트불교 린포체(스승)의 저서가 의외로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기도 한다”며 “명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실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유력 언론 가디언지(誌)는 2017년 7월31일자에서 주요 명상법 가운데 하나인 ‘마음챙김(Mindfulness)’ 관련 서적 시장이 2017년에만 13% 이상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흥미로운 건 같은 시기 출판시장 전체는 1.6%의 하락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출판산업의 부진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명상서적은 명상산업이 만들어낸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곧 이 통계는 명상을 발판삼아 출판산업이 활로를 열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있다.

특히 여러 명상법 가운데서도 '마음챙김'의 성장세가 발군이다.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에서 연원한 마음챙김은 1990년대 초반 존 카밧진 박사가 ‘MBSR’이라는 구체적인 스트레스 프로그램으로 실용화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2014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1982년 마음챙김 관련 출판물이 최초로 1건이 발표된 이래 2013년 549건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41%가 마음챙김 기법을 쓰고 있으며 마음챙김을 치료에 도입한 미국의 병원은 300여 곳, 전 세계적으로는 75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는 기어이 미국 내 마음챙김 시장 규모가 한국 돈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내셔널리뷰 2018년 1월1일자). 마음챙김을 위시한 명상수행이 '글로벌 블루오션'임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상 열풍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명상은 결국 아픈 마음을 다스리자고 하는 것이다. 아울러 얄팍한 눈속임이나 사탕발림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그 치유의 효과가 충분히 입증됐다. 미국 유수 대학의 두텁고 탄탄한 연구 성과물들이 그 증거다. 이에 따라 국내 출판시장들도 세계적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마음 아픈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스트레스 퇴치가 현대인들의 보편적 화두로 자리한 지 오래다. 취업난과 대인관계, 불확실한 미래 등에서 야기된 심리적인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국내 인구가 60만 명을 헤아린다. 대기업들도 직원들의 스트레스 완화를 통한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명상을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명상은 현대인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매우 값싸고 효율적으로, 그럼에도 대단히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명상서적의 호황도 꾸준히 지속될 것이란 이야기다.

이상근 불광출판사 주간은 “기업 내 직급별 마음챙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등 미국에서는 마음챙김 명상의 활용 폭이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앉아서 5분만 명상을 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국내에서도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탄탄한 산업으로 정착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출판시장 규모는 줄어드는데 명상서적 시장은 커나가는 것은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외서’만 잘 팔린다는 게 특징이자 한계다. ‘내국인’ 명상전문가가 적은 데다 행여 있더라도 불교계 출판사와는 같이 일하지 않는다.

마음챙김에 관한 에세이를 잘 쓰는 스님들은 적지 않으나, 실제적인 마음챙김 치료분야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는 스님들은 드문 형편이다. 더구나 명상의 발달은 불교가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서 촉발됐다. 명상의 가치 상승이 한국불교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물론 한국불교는 참선(간화선)이라는 뛰어난 명상법을 보유하고 있다. 명상서적은 명상산업이란 나무에서 나온 일종의 가지와 같다. 곧 명상 분야의 실력 있는 저자를 양성하려면 그 근본인 명상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수행자들이 많이 배출돼야 하고, 이를 위해 종단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각에서는 불교와 무관한 전문가 그룹을 포용해 그들과 협업하면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 선업스님은 “현재 미얀마의 위빠사나 명상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명상시장”이라며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수행하고 스승에게서 자신의 공부를 수시로 점검받을 수 있는 철저한 개방형의 시스템이 이들의 성공 비결“이라고 진단했다.

불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상대로 자신감 있게 다가가 소통하지 못하는 한국 선원(禪院) 문화의 소극성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간화선을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를 원한다면 먼저 간화선이 인기를 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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