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납족 엎드린 

풀 죽은 죽
고요한 죽

그 죽 드시고
할머니는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이상교 시 ‘죽’에서
 


그릇의 바닥에 나부죽하게 담긴 죽. 기운이 없어 보이고, 조용하고, 잠잠한 죽. 오래 끓여서 알갱이가 무른 죽. 정성으로 끓여낸 죽. 기력이 없는 할머니가 그 한 그릇의 죽을 드시고 힘을 얻으셨다. 할머니를 염려해 마음을 다해 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이 건듯 불기만 해도/ 솜처럼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이/ 몸이 작은” 할머니는 그 죽을 드시고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차분해지시고 더불어 원기를 회복하셨다. 미음을 낼 적에도 마음이 담겨 있으니, 마음이 지극하면 명약(名藥)보다 효험이 좋다.

이상교 선생님의 동시는 맑다. 동시 ‘꼬깃꼬깃’에서 “잎망울 속에는/ 나뭇잎이 꼬깃꼬깃/ 숨어 있지.// 꽃망울 속에는/ 꽃잎이 꼬깃꼬깃/ 숨어 있지”라고 썼는데, 이런 시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내심에 있는 깨끗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불교신문3519호/2019년9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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