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신미대사가 던진 한 마디
“좋아하지 않는 왕 도운 단 하나 이유
백성들에게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지금은 한글 불서와 한글 독송 많은데도
팔리지 않고 이용하는 불자들도 드물어
신미대사 한글 창제 원력 의미 되새겨야

지용스님

참 괜찮은 작품 하나가 너무 일찍 묻혔다. 영화 ‘나랏말싸미’ 이야기다. 지인들과 영화에 대한 대화를 좀 해보고 싶다 했더니 어느새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예술작품이니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역사해석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할 말은 참 많지만 여기서 풀어놓을 건 아니다. 그와 별개로 얼굴을 뜨겁게 했던 대사가 있었다. 신미스님의 말이다. 그다지 외경하지도 혹은 좋아하지도 않는 왕을 도와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 이유가 오직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널리 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라고.

이 이유는 영화 후반부 왕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등장한다. 어차피 스님들은 불법을 펼치기 위한 목적으로 일에 가담했다는 세종의 일갈이다. 상상으로 꾸며낸 대화라고 지적하면 할 말은 없지만 진실로 신미스님이 왕을 도와 새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말고는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글이 만들어지자마자 부처님 말씀을 담은 한글 불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은 너무 유명해 접어두고라도 <법화경> <원각경>을 비롯해서 100여 년간 한글로 작성된 책이 80%에 달한다고 한다. 유학자들 수가 훨씬 더 많고 유학을 근간으로 삼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교경전을 번역해 펴내기 전에 이미 20여종의 불교 경전 번역본이 전국에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 당시 스님들은 한글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 당시 스님들도 한글이 생소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히려 현대 스님들보다 휠씬 더 한문 문화에 젖어 공부하고 독송하며 평생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단지 우리말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글이 생기자 전법의 일념으로 너나할 것 없이 일제히 경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여전히 가혹하게 천대받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말이다.

한글이 반포되고 500년도 넘은 오늘의 한국에서 우리는 아직도 한문으로 된 의식문으로 기도를 한다. 올해도 군에 임관하는 스님들을 교육했는데 90%가 한문으로 된 의식문만을 활용하고 있었다. 종단에서 전파하는 우리말 의식문을 배운 적은 있지만 활용하는 절이 너무 적다고 한다. 필자 또한 군법당 아닌 곳에서는 우리말 예불문이나 반야심경을 거의 독송해본 적이 없다.

스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는 책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요즘은 훌륭하게 번역된 우리말 경전과 불서들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양적인 부분만을 빼고 보면 책의 수준은 다른 종교나 다른 분야에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팔리지 않고 읽히지 않는다. 대다수의 불자들이 기도할 때 읽는 한두 권의 경전 외에는 불서를 찾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걸고 우리글을 만들었던 신미스님의 대사에 얼굴이 뜨거워진 이유였다. 

불교는 석가세존께서 깊고 넓은 자비심으로 설파한 진리를 담고 있다. 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바쳤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접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노력하여 우리글과 우리말로 기록되었다.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설한 진리를 전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은덕을 입는다. 그런데 찾지도 관심 갖지도 않는다 하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미대사를 스크린에서 일찍 끌어내린 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의 무관심이 아닌지 되돌아본다.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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