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는 이는 선(禪)에 인연하여
미혹을 끊고 진제(眞諦)를 본다고 하나
이것이 모두 망상임을
깨달아 알면 곧 해탈이니라. 

- <대승입능가경> 중에서 
 


여름안거 선방도 한철을 지나는 중이었다. 담장에 어깨 걸쳐 핀 능소화도 한철을 지나는 중이었다. 수행도 한철, 꽃도 한철, 젊음도 한철이었다. 수행에 철이 어디 있느냐고 힐문한다면 답이 궁색해지긴 하지만, 선방에 앉아 몸으로 하는 수행은 늙어지면 허리가 굽고 앉을 힘이 없어지니 한철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용맹정진하는 선원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잠자리마냥 꾸벅꾸벅 조는 스님을 보았다. 죽비를 든 스님께서 가만히 다가가 어깨를 내리치고서야 졸던 스님은 자리를 고쳐 잡는다. 

앉은뱅이 졸음도 한철의 절집 행사거니와 난 뭘 잡고 한철을 졸았던가 생각해 본다. 깨어도 깬 적 없는 시절인연만 같은 승복 속의 몸뚱아리가 자꾸 나이를 먹는다. 그러니 앉아서 조는 스님이 더없이 정겹다. 성성함을 잠시 잃어버린들 적적함마저 잃을 리는 없었으니 선방의 수행이 꽃보다 향기롭지 아니한가. 나비가 나를 꿈꾸는 것일지언정 한철의 허물은 아닐 것이었다.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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