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살이 벌써 5년째
이웃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며칠 전 큰애한테
산소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이…

안혜숙

안개가 걷히면서 하늘빛은 물안개처럼 피어나더니 장독대 넘어 담벼락도 선명하게 보였다. 새벽바람에 웬 오지랖인지, 아니면 양심에 가책 때문인지 벌써 며칠째 눈만 뜨면 고양이 밥그릇부터 챙겨보고 미루를 기다리지만 아직까지 나나타지 않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난봄부터 부엌마당으로 몰래 숨어 들어오던 구릿빛 고양이 한 마리에게 가끔 먹다 남은 생선이 있으면 던져주었는데, 언젠가부터 제 집 마당처럼 들락거리며 “야옹”소리를 냈다. 하는 짓이 귀엽고 매일 찾아오는 게 기특해서 멸치 몇 마리씩이라도 챙겨주다 ‘미루’라는 이름도 지어서 불러주고, 외식이 있는 날은 음식점 종업원의 눈치를 살피면서까지 생선만 보면 미루 생각에 비닐봉지를 달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서울 집에 들려 삼일 만에 돌아와 부엌문을 열다가 흠질 놀라 문 뒤로 몸을 감췄다. 고양이 새끼들이 하나 둘 담을 넘어오더니 텃밭에 자리를 잡고 엎드리고, 조금 후에는 가끔 미루를 따라다니던 회색고양이가 먼저 텃밭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 걸 보고야 아하, 미루가 남자라는 걸 알았다. 새끼 네 마리까지 여섯 마리가 제법 그럴 듯하게 가족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서 처음에는 훈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금방 고개를 휘저었다.

고양이는 영물이라는데 잘못 내좇다가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해서 둘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들은 무서워 말고 내쫓으라며, 고양이는 원래 인간보다 자기들이 더 우세하다고 믿는 동물이라고 호통을 쳐서 내보내라 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야, 니네들 모두 가!”라고 별로 큰소리를 친 것도 아닌데 고양이들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면서 담을 넘어갔다. 

그런데 한 이틀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자 괜히 담장을 흘금거리고 텃밭을 어슬렁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며칠 후, 새끼 한 마리가 장독대 뒤로 숨어든 걸 보고도 나는 모른 척 하고 밥그릇에 먹잇감을 던져주었다. 그 다음 날은 미루가 슬쩍 비쳤지만 오히려 내가 모습을 감췄다. 그때부터 미루는 둥지를 틀지 않은 대신 새끼들을 아침에만 교대로 파견하듯이 담을 넘게 했고, 오후가 되면 미루가 슬쩍 나타나 내 표정을 살폈다.

정말 영리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럭저럭 봐주는 중인데 갑자기 고양이들 발길이 끊어진 것이다. 나는 고양이 가족이 궁금해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두루 돌면서 찾아다녔고, 마을 사람들은 농약이나 쥐약을 탄 음식물을 먹고 한 가족이 떼죽음을 당했을 거라고 귀띔을 해줬지만 오히려 그들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그리고 사람이란 정말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깟 먹다 남은 음식물 좀 주는 게 뭐가 귀찮다고 고양이 가족이 몰살을 당하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계속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고양이 밥그릇에 먹이를 담아 놓고 기다리는 내 마음은 무슨 심보인지, 새삼 나를 돌아보다가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오자, 불현듯 내가 외로운가 싶은 생각이 스쳐 혼자 웃었다. 짐승도 그리움을 남기는 데 하물며… 울컥하는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 동생과 주고받았던 추석날 성묘가자는 말이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강화 살이 벌써 5년째지만 이웃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내 가족 내 고양이까지, 내게 속해 있는 것들에 집착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사람이 그리운 건 축복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선 듯 나서지 못하는 내 삶이 구차해 진 건 아닌지 반성도 되지만, 오늘 하루 당장 느끼는 아련함이나 그리움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며칠 전 큰애한테 산소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아직껏 대답이 없다. 바쁘겠지, 그래도 마음이 서운한 건 숨길 수 없다. 하긴 나도 젊어서는 그랬다. 아니 나이 든 지금도 나 역시 자꾸만 핑계거리를 만들지 않는가. 하찮은 짐승이라도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부터 챙기느라고….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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