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포교’ 한길 30년 “칭찬해주세요…불교 미래가 밝아집니다”
‘어린이포교’ 한길 30년 “칭찬해주세요…불교 미래가 밝아집니다”
  • 김하영 기자
  • 승인 2019.09.1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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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60주년 맞이 특별기획
‘그 발걸음이 역사가 되다’
최미선 동련 사무국장


1986년 대불어 창립법회
참석하며 맺은 첫 인연…
1차 지도자연수회 ‘감동’
30년 포교 매진한 동력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
어린이포교 희망 있다”

만나기 그리 쉽지는 않았다. ‘자신이 부족한 것이 많고 더 훌륭한 분이 많은데…’ 인터뷰를 고사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꼭 만나야했다. 현재 한국불교의 어린이포교를 대표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동련’에서 30여년을 일한 ‘전문가’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린이포교에 미래는 있는가?” 개인적인 화두를 풀고 싶은 마음이 앞서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다행히 그 전문가는 싫은 내색 없이 반갑게 맞아줬다. 최미선 동련 사무국장이다.

지난 8월21일 부산 동래구에 있는 동련 사무실에서 만난 최미선 사무국장은 여전히 아이들처럼 맑았다. ‘동련 30년사’를 꼭 껴안은 모습에서 어린이포교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난 8월21일 부산 동래구에 있는 동련 사무실에서 만난 최미선 사무국장은 여전히 아이들처럼 맑았다. ‘동련 30년사’를 꼭 껴안은 모습에서 어린이포교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단법인 동련은 어린이포교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 1986년 문을 연 포교단체다. 30년 이상을 아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 한국불교의 어린이포교 역사는 동련의 역사와 같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역사를 함께 한 사람 가운데 최미선 국장이 있다.

그에게 결론부터 말해달라고 할 순 없었다. ‘전문가’가 실제 겪었던 어린이포교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1986년 10월3일 동련의 전신인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대불어)’ 창립법회를 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해 최 국장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찰 어린이법회 지도교사로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최 국장은 대불어 창립멤버는 아니었다. ‘지도자’(지도교사)로서 참석했고, 자원봉사자로서 행사를 도왔다. 그런 연유로 최 국장은 자신이 어린이포교의 역사로 조명 받는 것에 부담스러워 했다. “어린이포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스님들과 선배들이 있어 지금의 동련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동련도 어린이포교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은 자명합니다.” 

대불어 창립 이듬해인 1987년 1월 열린 제1차 전국어린이지도자연수회에서 받은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직 어린이포교를 위해 산다는 스님들, 밤을 새워서라도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선배들, 그 열정에 역시 밤샘으로 보답한 후배 지도자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만 생각하는 지도자들을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자부심과 나도 할 수 있다는 큰 힘을 얻었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딛은 어린이포교의 길은 최 국장에겐 운명이 됐고, 여러 곡절은 있었지만 ‘아이들의 연꽃밭(동련, 童蓮)’에서 30년 세월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이 좋아서, 불교가 좋아서”가 이유랄까.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포교에 대한 열악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어린이포교는 많은 불사 가운데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기 때문이다. 중요하다고는 여기는데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다른 불사들이 눈에 금방 드러나는 반면, 어린이포교는 투자에 대한 열매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다. 새싹포교는 지구력이 중요한데, 공찰의 경우 해볼 만하다 싶으면 주지 스님이 교체된다. 예전과 달리 아이들 자체가 많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지방의 작은 사찰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린이법회를 여는 사찰 수의 변화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1990년대 부산지역에서 어린이법회를 개설한 사찰은 68군데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부산에서 어린이법회를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사찰은 12곳.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고 지도법사를 갖춘 사찰로 한정하면 그 수는 10곳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이 최 국장의 전언이다. “1990년대만 해도 부산에서 어린이법회 연합행사를 열면 1만명의 아이들이 행사장을 메웠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전국의 어린이법회 인원을 다 모아도 이 숫자를 채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계종 포교원이 올해 초 발표한 어린이법회 현황에 따르면 전국 3000여 사찰 가운데 어린이법회를 개설한 사찰은 162곳. 동련은 실제 운영사찰을 120~130군데 정도로 낮춰 보고 있다. 현장 방문과 심층 전화면담 등을 통해 얻어진 숫자다. 어린이법회라는 이름만 있고 실제로 운영하지 못하는 사찰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포교를 대표하는 단체인 동련 또한 그 역사에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다. 현재 동래구에 있는 사무실도 2년 전에 이전한 곳이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최 국장의 눈은 반짝 빛났다. 숫자는 숫자일 뿐 그 속에서 찾은 희망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이포교 역사에 변화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어린이포교에 대한 스님과 불자들의 인식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이제는 어린이포교는 당연히 해야 하는 불사라고 여기고 있다”고 바로 답했다.

그리고 시대와 세대가 변한만큼 사찰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피고 해주는 방법이 현재 어린이법회를 활성화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불교 의례를 강요하는 것도 지양해야 할 자세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입시라는 목표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목표에 다가가도록 도와주거나, 목표에서 잠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금 사찰이 할 수 있는 포교가 아닐까 합니다.” 

이윽고 최 국장은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포교에 희망은 분명 있다.” 스님과 불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다, 지금까지 동련과 어린이포교를 위해 함께 해온 수많은 불자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다는 사실 또한 희망의 또 다른 증거다.

“어린이법회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불러달라”는 조계종 원로의원 정관스님은 가장 큰 우군이다. 대불어 회장과 동련 이사장을 거쳐간 많은 스님들, 포교에 쓰라고 자신의 집까지 선뜻 내놓은 보살님, 아무런 대가 없이 후원과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불자들, 이들 모두가 “희망을 일군 주인공들”이라고 최 국장은 강조했다.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 최 국장은 이 말은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포교의 현실은 녹록치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열심히 어린이포교에 매진하는 사찰과 스님, 불자님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을 격려해주세요. 칭찬해주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지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칭찬에도 인색하지 말아주세요. 칭찬 한 마디가 한국불교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창립 30주년을 맞은 동련은 그동안 역사를 정리한 ‘동련 30년사(史)’를 발간했다. 그 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길’, 동련의, 최미선 국장의, 모든 어린이 지도자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자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포교에 대해 우리 모두가 품어야할 마음자세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 동련은 서울에 없다?

종단을 대표하는 포교신행단체들의 사무실은 서울에 있다. 중앙신도회가 그렇고, 대한불교청년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체들은 서울, 특히 조계사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다. 서울이라는 지역적 의미에 더해 조계종 포교원 등 중앙종무기관이 있어 종무행정을 비롯,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받기 원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이포교의 대표기관 동련은 서울에 없다. 동련의 전신인 대불어가 탄생한 곳도 서울이 아닌 부산이었다. 현재도 동련의 사무실은 부산 동래구에 있다. 왜 그럴까? 1970년대 후반부터 부산지역의 스님과 불자들의 어린이포교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스님과 청년불자들의 의기투합은 사찰마다 어린이법회를 세우게 했고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도자들이 모이게 됐다. 모이니 좋은 방안이 나오고, 여름불교학교 최초 시작, 법회교재 <연꽃> 창간, 교사대학 및 연구소 개소 등을 불러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합단체의 구성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방자치가 권유되고 일상화되고 있는 현재에 있어 동련의 모습은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사실 동련은 서울에 정착할 기회가 있었다. 1989년 7월 서울 개운사에서 열린 제6차 전국어린이지도자연수회는 당시 서울에 본부를 두고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담당하고 있던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청교련)와 공동으로 개최됐다. 이때 모인 지도자들은 대불어와 청교련이 함께 일하면 어린이·청소년 포교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진지하게 의논했지만 안타깝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최 국장은 “두 단체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같이 일하지는 못하게 됐다”며 “당시 연수회는 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평소의 배에 가까운 700명이 넘는 지도자가 참석해 경찰들이 행사장에 왔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부산=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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