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24> 전쟁 속에서 피어난 극락정토 - 눌지④
[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24> 전쟁 속에서 피어난 극락정토 - 눌지④
  • 조민기 글 견동한 삽화
  • 승인 2019.09.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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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호의 각성

“고구려에 신국의 왕자님이 오신 것이 벌써 두 번째로군요.” 

아도스님은 복호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주며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국이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복호의 한숨 섞인 대답에 아도스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시주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허나 덕분에 고구려와 신국의 교류가 시작되었지요. 신국에 위기가 없었더라면 소승과 시주님이 이렇게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좋은 것도 지나치면 화가 되기도 하고,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알쏭달쏭한 아도스님의 말에 복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승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오게 되었습니다. 소승이 있던 나라의 황제는 여러 나라를 정복한 강한 나라였습니다. 소승의 스승은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지요.”

복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늙은 스님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 소승이 태어난 나라는 사라졌고, 소승을 고구려에 보낸 황제는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소승은 나라 잃은 백성이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나 보십시오. 이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갑자기 저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해주십니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도스님은 겸손과 두려움이 섞인 복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감당하셔야 합니다. 왕자님께서 고구려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혹 실성왕의 복수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왕자님께서 고구려에 오신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왕자님께서 그 이유를 스스로 분명히 알게 되신다면 고구려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대왕께서 부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왕자님에게 왜 저와 만나라고 하셨을까요?” 

복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아도스님을 바라보았다.

“왕자님이 왜 고구려에 오게 되었는지 잘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실성왕께서는 왕위에 오르시자 곧바로 왕자님의 동생분을 왜국에 질자로 보내셨지요.”

“미해를 보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화친은커녕 왜국은 매년 신국을 공격했습니다.”

복호의 눈에 분노와 서글픔이 서렸다.

“백제는 그보다 훨씬 먼저 태자를 왜국에 보냈습니다. 미해 왕자가 질자로 간 것을 알고는 백제에서 손꼽히는 귀한 장인을 왜국에 귀화시켰습니다. 왜 그리했는지 아십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복호에게 아도스님이 말했다.

“왜국 왕의 마음을 얻은 백제의 장인은 함께 오기로 했던 제자들이 신국의 방해로 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왜국에서는 군사를 보내 그들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왜국이 동맹국인 신국을 공격한 이유입니다. 신국은 왕자 한 명을 보냈을 뿐이지만 백제는 태자와 장인에 이어서 학자까지 보내주었습니다. 백제의 학자는 왜국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백제의 태자는 왜국의 공주와 혼인하여 왜국 왕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지금 백제의 왕비가 바로 왜국 왕의 딸입니다. 왜국은 백제와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니 앞으로도 백제를 위해 기꺼이 군사를 내어줄 것이고 백제가 원하면 언제든 신국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복호는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신국이 왜국에게 시달리는 것은 그저 운이 나쁘고 왜국이 나쁘며 신국의 위치가 왜국과 가깝기 때문이라고만 여겨왔다. 어린아이만도 못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다. 고구려의 승려가 이처럼 중요하고 복잡한 일들을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신국의 왕자라는 신분이 부끄러웠다.

“시주께서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자님께서 청하신다면 다음에 차를 마시러 오실 때 또 말동무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날 복호는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도스님의 말처럼 고구려에 오게 된 것은 불운이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가 되었건 고구려에서 지내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이불란사는 복호가 가장 즐겨가는 장소가 되었다. 부처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찾는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들고 화합하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같았다. 이불란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복호를 경계했던 고구려 신하들은 차츰 그를 받아들였다. 1년이 지났을 무렵, 복호는 법당에 올라가 예배를 하는 불자가 되었다.
 

붉게 물든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고도령은 
위굴마가 그녀에게 주었던 
호안석 염주를 품에서 꺼냈다 

아도의 사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도령은 손에 끼고 있던 
반지까지 건네며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스님의 
아버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가십시오

위나라 수도에 도착하거든 
관청에 가서 이 반지를 보여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작은 아도, 유학길에 오르다 

415년, 복호가 고구려에 온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눈매가 깊고 이국적인 생김새가 꼭 법당의 부처님을 닮은 작은 아도스님은 볼 때마다 동생 미해가 떠오르게 했다. 외로운 타국에서 아도스님을 만나고 또 부처님을 만난 것은 복호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오늘 작은 아도스님을 만나러 가면서 복호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작은 아도스님이 유학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6살이 된 아도스님은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아버지를 찾아 위나라로 간다고 했다. 

“저의 큰 소원이었습니다. 다섯 살 때 부처님께 귀의하고 나서 아버지를 뵐 수 있게 해달라고 10년을 기도했는걸요. 다행히 큰스님께서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위나라는 너무 멀지 않습니까? 위험할 텐데요.”

안타까운 마음에 말려도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복호 자신도 질자의 신분에 불과한데 그가 말린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구려의 병사들은 열다섯 살만 되어도 칼과 창을 능숙하게 다룹니다. 저는 병사가 되지는 못했으나 스승님처럼 훌륭한 스님이 되고 싶어요. 위나라에 가면 부처님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이름이 미해라고 했던가요. 저를 보면 동생이 생각난다고 하셨지요?”

복호는 아도스님의 조각 같은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위나라에 가서 부처님을 뵈면 동생분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왕자님을 위해서도 기도를 드릴게요.”

“저도 스님을 위해 여기서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제가 왔을 때 안 계시면 신국으로 왕자님을 뵈러 가겠습니다. 아셨죠? 그때 모른 척하면 안 됩니다.” 

아도스님이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굳어있던 복호의 입에서도 웃음이 피식 나오고 말았다. 

“스승님께서 저에게 경험을 쌓고 견문을 넓히는 기회라며 많이 보고, 듣고, 배우고 오라고 말씀하셨어요.”

“큰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저 제 마음이 조금 아쉬울 뿐이지요. 사실 저도 고구려에 와서 큰스님 덕분에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아쉬워하던 복호는 고도령과 함께 걸어오고 있던 큰 아도스님을 보고 얼른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도령도 복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밀린 정담은 충분히 나누셨습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요.”

붉게 물든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고도령은 위굴마가 그녀에게 주었던 호안석 염주를 품에서 꺼냈다. 

“지니고 있으면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지고 가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지니고 계셔요.”

아도의 사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도령은 손에 끼고 있던 반지까지 건네며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스님의 아버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가십시오. 위나라 수도에 도착하거든 관청에 가서 이 반지를 보여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작은 아도스님의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두 분이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울먹이던 작은 아도스님은 고도령과 큰 아도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스승님, 어머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바랑을 짊어진 아도스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복호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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