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주

전세계의 많은 도시가 이번 여름 사상 최고의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미국, 프랑스의 친구들도 고온현상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도 ‘대프리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온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화석 연료의 사용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이 이런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설레는 여름밤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저녁에 가족들과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과일을 먹는 일은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이렇게 더울 때면 더위에 고생하고 있을 약자들이나 힘든 사람들이 생각난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과 고온의 근로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회적 취약 계층의 이웃들이 떠오른다. 일상의 행복을 누리면서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일은 내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마음이 항상 승리해서만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가면서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을 도울 때에는 무작정 접근하기 보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보는 정견을 갖고 여러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 또한 허영이 나의 주인이 되는 시간들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세상은 분명 발전하고 있다. 과학과 의식의 발전이 서로 다르지 않다. 예전보다 가난도 줄고 전쟁도 줄어들고 질병으로 인한 죽음도 줄어들고 있다. 막연한 낙관주의와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통계 수치와 데이터가 말해주는 결과다. 우리를 발전시킨 것의 또 다른 이면은 바로 연민과 사랑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이웃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일. 그것 또한 발전이다.

약자들과 지구의 환경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어떻게 돕고 무엇을 바꾸어 나가야 할 지 생각해본다. 사랑과 연민의 힘, 지혜와 해결 능력이 우리를 이끌어 왔듯이. 여름밤이 깊어만 간다. 폭염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면 땀과 고난을 식혀 줄 가을이 온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단단해진 땅에 남은 것은 결코 허무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이름은 희망일 수 있겠다.

[불교신문3518호/2019년9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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