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거문고 줄
[수미산정] 거문고 줄
  • 황건 논설위원 · 인하대 성형외과 의사
  • 승인 2019.09.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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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입학부터 분과 전문의까지 13~15년
초발심 입산 후 말사 주지까지 최소 10년
의사수련과 사문수행은 똑같이 길고 험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마음가짐 중요
황건

어쩌다 드라마를 보면 마치 의사는 저절로 되어 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까지 녹록치만은 않다. 6년간 대학을 다녀야 하고 졸업하고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의사면허증을 받는다. 이후 1년간의 인턴과 약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또 한번 시험을 치러야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이후 1~2년간의 ‘전임의(펠로우)’ 기간을 지나면 ‘분과전문의(소화기내과, 소아외과등)’가 된다. 즉 의과대학 입학부터 분과전문의가 되는 데까지는 13~15년 기간이 걸린다. 남자의 경우 군복무를 포함하면 그 기간이 더 길어진다. 

초발심하여 입산하면, 행자부터 시작하는 수행 기간을 거쳐 말사의 주지가 되는 데까지도 최소한 10년이 걸린다고 하니, 의사의 수련과 사문의 수행은 길고 험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가 수련받던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수련의 시절에는 주중에 집에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나는 1년차 때 결혼하느라 눈치를 몹시 보며, 1주일이나 쉬었으니 당연히 여름휴가는 반납해야 했다.

예전에 비해 요사이는 2018년에 전공의ㆍ수련의 근무시간을 최대 주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되는 등 환경이 개선되었으나, 격무에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얼마 전에는 인천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레지던트) 2년차가 근무 중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한 바 있다.

이 사건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던 중에 만해스님이 집필한 <불교대전>(이인섭 역주, 현암사)을 읽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했다. 자치품의 제1장 학문에서 ‘사십이장경’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문(沙門)이 밤에 가섭불의 <유교경>을 소리 내어 읽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여, 이렇게 깨닫지 못할 바에는 출가나 하지 말 것을 하고 뉘우치며 중노릇을 그만둘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예전 집에 있을 때 너는 무슨 일을 하였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면 어떻더냐?” “그래 가지고는 소리가 안 나나이다.” “그렇다면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고?” “소리가 끊어집니다.” “줄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아 알맞을 때는?” “소리들이 고르게 울립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沙門)이 도를 수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음씀이 적당하면 도를 얻을 수 있으려니와, 도를 구함에 있어서 너무 다급할 때는 몸이 지칠 것이고, 그 몸이 지칠 때는 마음이 괴로울 것이고, 마음이 괴로울 때는 수행이 뒷걸음질 칠 것이고, 그 수행이 뒷걸음 치고 났을 때는 죄가 반드시 더해 갈 것이다. 오직 마음과 몸이 청정하고 안락하여야 도를 잃지 않으리라.” 

무슨 상을 타려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노력하였으나, 결국 논문조작으로 끝난 10여 년 전의 해프닝은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즐겨 외우는 만해스님의 ‘거문고 탈 때’도 생각난다.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 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네를 뜁니다”라는 구절이다. 이 시야말로 “줄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아 소리들이 고르게 울리는 것”을 느끼게 한다.

글을 쓰는 중에 문자를 받았다. “아무개 환자 협진관련 전공의가 호출이 안 되고 있습니다.” 나는 집에서 ‘2차 콜(call)’을 받고 있지만, 연휴에도 응급환자를 진료하느라 병원을 지키며 다급하게 문자를 보내는 제자 의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들이 수련을 마치고 훌륭한 전문의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여름과 겨울 안거에 들어 용맹정진하는 사문들에게도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도를 얻으시기를 기원한다. 

[불교신문3517호/2019년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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