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스님

9월이 왔습니다. ‘9월’이라고 쓰고 ‘가을’이라고 읽을 수 있는 진정 가을인 것 같습니다. 풀벌레 소리가 오히려 살짝 쓸쓸해지기까지 하는 9월의 아침에 운서주굉스님께서 쓰신 <죽창수필>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 보는데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기도를 하는 일, 수행을 하는 일,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너무 많은 요행을 바라지 말라. 그저 묵묵히 담담하게 하라.”

살아가면서 기도를 수행을 하면서 삶의 여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요행을 바라는 일. 아주 많지요. 그래서 하다가도 마음에 드는 바가 없거나 신통찮을 때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삶의 태도로 심하게는 부처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저지를 때가 아주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편리에 맞게 생각한대로 ‘의’라고 규정지으면서 말이지요. 스스로가 하는 것은 모두 정의로운 것이고 타인이 하는 행위가 자신의 요행이 되지 않을 때는 불합리한 것이라고 단언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하고 말이죠.

<논어> ‘계씨’편에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됨이 왔을 때 ‘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군자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어디 군자에게만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하루하루 세상을 수행터 삼아 살아가는 우리 세상의 수행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스스로에 대한 ‘의리’아닐까 합니다.

삶의 모든 시간에 너무 요행만을 바라지 말고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의리’를 잘 지킬 수 있는 9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교신문3517호/2019년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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