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닦아 佛法 깨친 도인…땅을 품고 하늘 받든 기둥
마음 닦아 佛法 깨친 도인…땅을 품고 하늘 받든 기둥
  • 박부영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9.09.0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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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伽藍과 뫼] ③ 도봉산 천축사와 주변 암자들
선인봉 아래 천축사 석굴암 만월암이 나란히 있다. 녹음이 우거져 만월암은 보이지 않는다(왼쪽부터).
선인봉 아래 천축사 석굴암 만월암이 나란히 있다. 녹음이 우거져 만월암은 보이지 않는다(왼쪽부터).

 

도봉산은 북한산과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핵심 권역인 자운봉 주봉 선인봉 신선대 만장봉 등 크고 아름다운 봉우리가 즐비하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도 풍부하다. 도봉산은 도봉산역 망월사역에서 오르는 서울권과 송추계곡 오봉이 위치한 북부권, 그리고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회룡사권역으로 구분된다.

남쪽방향 도봉산의 사찰은 천축사 권역과 망월사 권역으로 나뉜다. 두 사찰은 도봉산을 대표하는 가람이다. 천축사는 도봉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도봉산 중앙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며 부처님 6년 설산 고행을 따라 만든 무문관(無門關) 수행이 처음 시작된 사찰이다. 지금도 1965년 만든 무문관 2층 건물이 서 있다. 
 

도봉산 등산로와 사찰 위치를 보여주는 안내판.
도봉산 등산로와 사찰 위치를 보여주는 안내판.

◇ 청화대선사 선 전통 잇는 광륜사 

지난 8월27일, 28일 한여름 더위가 한 풀 꺾인 평일 도봉산을 찾았다. 그래도 햇볕은 여전히 뜨겁게 쏟아내렸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배낭을 매고 산을 올랐다. 계곡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북한산국립공원이라고 새긴 표지석을 지나면 사찰이 나온다. 청화스님의 가르침을 잇는 광륜사(光輪寺)다. 광륜사의 원래 이름은 만장사(萬丈寺)로 673년 의상조사가 천축사와 함께 창건했다.
 

광륜사 전경.
광륜사 전경.

만장사 천축사 영국사가 도봉산 3대 사찰이었다. 이 중 영국사는 조선시대 양주 목사 남언경이 폐찰하고 도봉서원으로 바꾸었다. 만장사 역시 탄압을 받다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된 것을 조선 후기 조대비 신정왕후가 중건하여 기도하며 휴식을 취하는 별장으로 사용했다.  

신정왕후는 별장에서 노후를 보냈으며 흥선대원군도 이 곳에서 휴식하며 국정을 보았다고 한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 숙소였으며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를 끌었다. 광륜사는 그 이후 역사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금득보살께서 사찰을 대대적으로 중창하였으며, 2002년 5월5일 대공덕주 상정 임창욱 거사님과 명정월 박현주 보살님의 시주와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최고의 선지식인 무주당 청화 대종사께서 사찰이름을 광륜사(光輪寺)로 새롭게 개원하였다.” 
 

영국사 발굴지 김수영 시비가 앞에 놓여 있다.
영국사 발굴지 김수영 시비가 앞에 놓여 있다.

◇ 발굴 한창인 영국사 터 

광륜사를 지나 왼쪽은 도봉계곡을 따라 만장봉 신선대 등으로 향하는 도봉산 주요 등산로다. 도봉분소가 있는 오른쪽은 녹야원 은석암이 나오는 다락능선 길이다. 

도봉계곡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봉서원 터가 나온다. 지금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하여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원래 고려시대 사찰 영국사(寧國寺)였다. 영국사는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번성했지만 조선 시대 들어서 쇠퇴한다. 효령대군이 진관사 수륙대재를 영국사로 옮기려 시도해 한 때 소생하는 듯 했지만 양주목사 남언경에 의해 조광조를 제사지내는 서원으로 바뀐다.

도봉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막을 내렸다. 서원철폐령 이후 121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2012년 발굴조사가 이뤄져 영국사(寧國寺) 시절의 불교용구 79점이 나왔다. 또 동명이인 혜거국사와 혼동됐던 혜거국사의 존재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법안종 초조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을 이었으며 적연국사 영준의 스승인 혜거국사는 말년에 영국사에 머물며 망월사를 중창했다.

영국사 터를 지나면 도봉계곡을 가운데 두고 또 길이 나뉜다. 오른쪽은 천축사 가는 길이다. 길은 도봉대피소에서 또 나뉜다. 왼쪽으로 오르면 천축사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석굴암과 만월암이다. 도봉계곡 왼편은 금강사 구봉사 성불사 천진사가 일렬로 서 있고, 그 옆으로 마당바위 못 미쳐 성도원, 정상 부근에 관음암이 있다.  
 

천축사 전경.
천축사 전경.

◇ 무문관 전설 서린 천축사

천축사는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중간에 일주문이 나온다. 문무왕 13년(673) 의상스님이 문도들을 이끌고 만장봉 동쪽 기슭에 왔다가 그 산세의 빼어남에 감탄하여 현재 위치에 창건하고 옥천암이라 했다. 

그 뒤 고려 명종 때 영국사 부속 암자가 되었다. 이후 조선 태조 7년(1398)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예전 이 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 현판을 하사했다. 

천축사라는 절 이름은 지공이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옛 인도인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였다. 천축사가 유명해진 계기는 1965년 무문관이 건립되면서다. 종단 정화를 주도했던 문정영스님은 정화 정신에 걸맞게 참선에 매진해야한다는 생각에 사제인 제선스님의 청을 받아 이곳에 무문관을 세웠다.

무문관은 부처님처럼 6년 고행을 하자는 취지에서 한 평 규모의 방에 6년 동안 나오지 않고 면벽수행하는 가장 극한 수행이다. 무문관을 건립하여 6년 폐관정진했던 제선스님은 천축사를 내려간 뒤 부산에 들렀다가 종적을 감춰 지금껏 전설처럼 떠돈다. 

부산 범어사의 지효스님이 1960년대 후반 천축사에 들어와 당신이 직접 무문관에 입방하고 이를 운영했다. 지금은 일반인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24시간 무문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선생이 지효스님을 은사로 천축사에서 출가해 이곳에서 단편 ‘목탁새’로 등단했다. 그러나 불교와 종단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제적 처분당한다. 승적도 없는 상태에서 종단이 본보기식으로 희생양 삼은 것이다. 천축사가 기록하지 않은 또 하나의 역사다. 
 

천축사 무문관 모습.
천축사 무문관 모습.
만월암이 절벽 틈 암벽 사이에 있다.
만월암이 절벽 틈 암벽 사이에 있다.

◇ 의상대사 창건 굴법당 만월암

천축사는 도봉산의 산 정상 부근 암자를 모두 거느린 중심 사찰이었다. 포대 아래 만월암, 주봉 아래 관음암, 우이암 원통사가 모두 천축사 부속 암자였다. 천축사를 지나 자운봉으로 향하면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된다.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오르기 전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석굴암이다. 도봉산에는 석굴암이 3곳 있다. 만장봉 아래와 송추 쪽 오봉 아래, 그리고 김구 선생이 기도했다는 사패산 회룡사의 석굴암이다. 

도봉산 석굴암은 이름 그대로 굴법당이다. 만장봉 아래 자연굴에 법당을 조성했다. 그 옆에는 5백나한전이 있다. 석굴암에 서면 상계동 아파트 단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석굴암에서 도봉대피소 까지 내려와서 다시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만월암(滿月庵)이 반긴다. 선인봉까지 다시 올라가서 옆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현재는 비법정탐방로로 출입을 제한했다.

선인봉 아래는 암벽등반을 즐기는 등산객들로 늘 북적인다. 수직으로 곧추선 봉우리는 암벽등반 실습지로 손꼽힌다. 만월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그 뒤 보덕굴이라는 선수행터였다. 조선시대 조성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석불좌상을 통해 이 암자가 계속 존속했음을 알 수있다. 1940년대 여여거사 서광전이 중창하고 혜공스님이 20여년 전 만월보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노보살 한 분이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위로한다. 등산객들은 여름에는 맑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겨울에는 뜨거운 차로 몸을 녹인다. 내려가는 길에 암자의 쓰레기를 배낭에 넣고 가는 보시를 한다.
 

석굴암 나한전.
석굴암 나한전.

다른 사찰과 암자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산을 내려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국사 터를 지나 왼쪽으로 오르면 작은 암자가 줄지어 서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암자는 금강암이다. 1928년경 창건했다고 전하는 비구니 사찰이다. 경내에 ‘송석거사 송덕비’가 서있다.

송석 박문규는 1900년대 중반 인물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도봉산 일대의 땅을 사서 유유자적 지냈으며 해방 후 부모 잃은 고아들을 거둔 사회사업가이며 교육자였다. 그를 칭송하는 글이 도봉계곡에 새겨져 있다. 금강암 바로 위 계곡 옆에 구봉사(龜峰寺)가 나온다. 1952년 경 창건했는데 절을 지을 때 거북이 아홉마리가 나와서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금강사, 비구니 스님 절이다.
금강사, 비구니 스님 절이다.

◇ 불교양로원 역사 간직한 성도원 

구봉사 바로 아래 절터가 나온다. 돌에 새긴 옥천사(玉泉寺) 사찰 이름만 남아 있고 지금은 빈터다. 마당바위 옆 성도원(成道院)이 본래 이 곳에 있었다. 신정왕후 조대비 승하 후 당시 천축사 주지 김능성 스님과 황궁 나인 김상궁의 인연으로 조대비의 위패를 모시고자 고종의 재가를 받아 창건한 절이다. 김능성스님은 이북 출신으로 개마고원 포교당을 운영했던 애국지사이며 교육가로 알려져 있다. 

능성스님의 상좌로 천축사 주지이던 영호스님이 재단법인 성도원불교양로원을 설립했는데 6·25이후 자식과 가족을 잃고 갈 곳 없어 떠돌던 노인들을 받아들였다. 1950년대 말 정화(淨化)로 천축사에 있던 영호스님과 권속들은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영호스님 상좌 도훈스님도 천축사에서 출가해 그곳에서 매일 산 아래 학교를 오갔었다. 은사 스님과 함께 도봉 계곡 아래 양로원으로 옮겼지만 도봉산이 유흥지로 개발되고 행락객이 오가며 사찰 주변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심지어 개를 끌고 와 절 옆에서 도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도훈스님은 전각을 그대로 도봉산 위쪽으로 옮겼다. 지금 극락전이 그 전각이다. 올해 73세인 도훈스님은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늘 웃으며 맞는다. 스님은 “이 높은 곳에까지 신도가 오겠어. 그냥 나 혼자 이렇게 사는 거지”라며 밭에서 제일 큰 가지를 따서 주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마당바위를 지나 자운봉으로 향하기 바빠 성도원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관음기도도량 성불사.
관음기도도량 성불사.

◇ 유명한 관음기도도량 성불사 

다시 도봉계곡에서 우이암 방향으로 잡으면 금강암 위쪽으로 암자 두 곳이 나온다. 성불사와 천진사이다. 성불사는 1968년 현대건설 일가의 도움을 받아 대웅전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계종 사찰이다. 천진사는 단군을 모신 점이 특이하다. 창건주를 기리는 비에는 개운사에서 영호스님으로부터 경을 배우고 건봉사에서 강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락능선 방향에도 사찰 두 곳이 있다. 계곡 옆의 녹야선원(鹿野禪院)과 그 위쪽 은석암이다. 녹야원은 인도 북부 사르나트에 있는, 초전법륜지다. 1952년 만월스님이 창건했다는 선학원 사찰이다. 은석암은 1918년 세운 이제 100년이 된 사찰이다. 사찰 이름처럼 불상도 동굴 속 산신각 불상도 은색이다. 조계종 사찰이다. 
 

은석암 오르는 입구 모습.
은석암 오르는 입구 모습.
무수골 입구의 자현암.
무수골 입구의 자현암.

◇ 무수골 암자 자현암

도봉초등학교에서 무수골(無愁)로 들어서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무수골에서 내려온 맑은 계곡 사이로 벼가 익어가는 들이 펼쳐져 있다. 북적이는 도봉 계곡과 달리 한산하고 여유롭다. 길을 따라 가면 보문능선이다. 도봉산 능선 중에서도 완만하고 편한 축에 속한다.

계곡 초입에 단정한 자태의 암자가 반긴다. 자현암(慈賢庵)이다. 자현암은 비구니 사찰로 해인사 말사이다. 혜선스님이 1960년 경에 창건했다. 합천군 우두산 자락에 심원사(尋源寺)가 합천댐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현재 자리로 이전하여 창건했다. 

무수골 계곡이 완만하면서 조금씩 상승한다. 그러다 왼쪽으로 가파르게 달린다. 설악산 봉정암 가는 길과 비슷하다. 계단을 오르면 보문능선이 반기고 발 아래 서울 북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우이암이 우뚝 솟았는데 넓은 절이 나온다. 우이암 배경도 그렇고 시원한 전망, 넓은 절터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잘 생긴 소나무가 절을 더 빛낸다. 원통사다. 

원통사의 본래 이름은 보문사였다. 우이암도 관음봉이라고 했다. 절 이름, 봉우리 명칭에서 보듯 관세음보살의 상주처다. 신라 경문왕 3년(864)도선국사가 창건했다가 전한다. 고려 문종 7년 광월대사가 재창하고 조선 태조 원년(1392) 천은선사가 삼창했다. 이후 조선 영조 순조 고종 등 여러 번 중창했으며 순조 10년(1810) 청화대사가 중창 후 나라에 큰 경사가 있자 ‘나라와 산천의 은혜를 갚았다’는 뜻으로 보은사로 불렀다. 원통사도 천축사 부속 암자였지만 지금은 독립된 사찰이다. 
 

원통사 전경 불사가 한창이다.
원통사 전경 불사가 한창이다.

◇ 이성계 기도 흔적 ‘상공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자취가 뚜렷하다.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은 지금도 굴법당으로 사용한다. 약사전 아래 거북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새겼다는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도봉산 최고의 길지이며 수행터 답게 무학대사를 비롯해 만공 동산 춘성스님 선지식이 정진하여 이곳에서 견처를 얻었으며 유학자들도 즐겨 찾았다. 원통사 주변에는 두꺼비, 학, 독수리, 거북 등 108종류의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산, 수많은 전설과 인물을 품은 사찰과 암자들, 맑고 풍부한 물과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나무들…. 지하철만 타면 갈 수 있는 명산 명찰과 함께 사는 서울시민과 경기도민들은 행복하다. 산에서 마주치는 밝고 건강한 등산객들의 얼굴이 그렇다고 말한다. 
 

무수골에서 바라본 도봉산 전경.
무수골에서 바라본 도봉산 전경.

 

◼ 도봉산과 불교  

의상대사 도선국사 자취 뚜렷
절 암자 100여곳 품은 불국토

도봉산의 아름답고 웅장한 봉우리.
도봉산의 아름답고 웅장한 봉우리.

도봉산(道峰山)은 서울과 경기북부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도선사 옆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나뉜다. “푸른 하늘을 깎아 세운 만 길 봉우리”라고 했던 시인의 표현처럼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 오봉 우이암 신선대 등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봉우리가 특색이다.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자태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도봉산의 상징이다. 

국립공원 북한산에는 모두 100여 사찰이 있을 정도로 불국토이기도 하다. 그 중 도봉산 지구에만 35개 사찰이 있다. 의상대사 도선국사의 자취가 서린 천년고찰에서 조선 후기 왕조의 이야기를 품은 사찰과 한국전쟁의 아픔까지 다양한 이력이 스며있다. 서울과 인접하면서도 크고 넓은 산세 때문에 산 곳곳에 자리한 암자에는 근현대의 수많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정진했다.

도봉(道峰)이라는 명칭은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한다. 도를 닦는 곳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휴일 오전 도봉산 역 앞은 등산객들로 인도가 좁을 정도다. 맞은 편에서 보면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듯 등산객이 몰려든다. 북한산과 합쳐 연간 1000만명의 탐방객이 방문한다. 단위 면적 당 탐방객이 세계에서 가장 많아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중 270만명이 도봉지구를 찾는다. 이는 북한산국립공원 8개 지구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도봉산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산세 덕분이다. 도봉산은 웅장하고 다양한 면모를 자랑한다. 수직 암벽, 80도 경사에 이르는 가파른 길이 있는가 하면 계곡을 따라 평지에 가까운 쉬운 길도 있다. 도봉중심지인 문사동계곡, 망월사 쪽의 망월사계곡, 무수골의 보문사계곡과 더불어 용어천 거북골 등 계곡이 많고 수량도 풍부해 쉼터로도 제격이다. 게다가 국철과 지하철 7호선이 합류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도봉산 계곡.
도봉산 계곡.
도봉산에서 바라본 서울 일원.
도봉산에서 바라본 서울 일원.

[불교신문3516호/2019년9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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