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은 독이라도 마실 정도이고 
가시로 찌르는 듯이 추우니
세 치 혓바닥으로 맛을 알고
온갖 진구(塵垢)도 보존하지 못하네. 

- <광홍명집> 중에서
 


연지(蓮池)에 연꽃이 피고 짐을 아쉬워하다 환갑 지나 얻은 늦둥이 같은 백련 한 송이를 따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은 연지의 꽃일망정 누구도 내게 연꽃을 준 적이 없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연지에서 꽃을 훔쳐온 것이 맞다.

향기만 훔쳐도 수행자는 가슴이 아픈데, 하물며 주지 않은 꽃을 꺾어 왔으니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 연꽃차를 마시고 싶은 욕심 탓이었다. 도반이 말했다. “욕심이 재물에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소반에 연꽃을 담아 녹차를 조금 넣고 끓는 물을 부으면 그윽한 차향이 그만인 게 연꽃차다. 거기다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면 한여름 더위마저 어느새 천리만리 달아났으니, 그 차맛 욕심이 끝내 일을 저지르도록 나를 부추긴 것이다.

수년 만에 연꽃차를 마셨음에도 내내 마음에 거리낌이 치밀었으니, 맛이 있을 리도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훔친 사과가 맛있다‘는 말도 헛소리임에 분명하다. 괴로움이 어디서 오겠는가. 다스리지 못한 갈증, 그 마음 하나 때문 아니던가. 

[불교신문3516호/2019년9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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