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끼리 연결하는 다리가 
돌다리 나무다리 물다리라면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는
말다리 글다리이다 

지금 글다리를 놓고 있는데
마음이 건너다니는
다리를 놓는 게 쉽지 않다

김양희

물다리를 건너보았는가? 사라오름에는 1년에 한두 차례 물다리가 만들어진다. 다리라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물다리’라니? 한라산 날씨는 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폭우로 사라오름 산정호수에 놓인 나무다리는 물이 차오르며 잠겨버린다. 때로는 허벅지, 허리춤까지 호수물이 올라와 다리 난간만 조금 보인다. 이 때문에 나무다리는 돌연 물다리가 되고, 그 며칠 ‘물다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지난 7월 태풍 다나스가 지나가면서 쏟아놓은 비와 그에 뒤따른 기습 폭우로 한라산 사라오름 산정호수가 빗물로 그득해졌다. 호수는 성판악에서 숲으로만 두어 시간 걸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눈앞이 확 트이며 나타난다. 만수가 된 산정호수는 경이 그 자체다.

오목한 산숲 그릇에 담긴 새파란 물이라니. 산 그릇의 바닥은 고이며 빠지며 쉴새없이 움직이는데 겉은 평온하기만 한 푸름이다. 숲 색과 하늘빛, 바닥 색이 더해진 호수의 물다리는 산길을 오르며 뜨거워진 무릎 관절의 피로를 순식간에 씻어간다. 

까만 올챙이 떼가 꼬리를 흔들며 물다리를 건너다닌다. 등산화를 벗은 맨발도 올챙이를 따라간다. 하지만 물다리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리 어느 부분에 위험 요소가 도사라고 있는지 훤히 볼 수 없기 때문이고, 중간중간 계단식으로 되어 어느 지점에서 발목, 종아리, 허벅지가 젖을 만큼 물이 차오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물다리를 헤아리며 발을 옮겨야 사라오름 정상 쪽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한여름 살갗에 닿는 산정호수의 물살은 차다기보다 아주 기분 좋은 청량감을 맛보게 한다. 

또, 물다리 하면 정선 아우라지의 전통 돌다리가 생각난다. 강에 일자형 다리 발목돌을 세우고 그 위에 넓적하고 평평한 돌로 상판을 얹어 만들었다. 아우라지 다리가 물다리는 아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코끼리 떼가 줄지어 물다리를 건너가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 끝자락에서 코끼리 떼를 따라 조양강을 건너면 가을을 만날 수 있다. 

큰바람에도 푸름푸름 하던 나뭇잎들이 건들바람에는 슬쩍 구부러지고, 하얀색과 빨간색 등 화려한 색의 여름꽃들도 보라와 노랑 등 가을꽃 색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가을. 물을 건너는 코끼리 떼가 생각날 때면 정선아리랑열차를 타고 아우라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물큰 든다. 

다리는 물이 내 앞을 가로막을 때 그 너머로 건너가는 시설물이다. 우리는 물을 만나면 물을 밟거나, 헤엄을 치거나, 다리를 지나가야 한다. 다리 이름은 물길의 폭이나 성질에 따라 다르게 붙여진다.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물리적인 장치의 다리도 있지만, 마음이 넘나드는 다리도 있다. 그렇다면 마음과 마음이 지나다니는 다리는 무엇이겠는가? 땅끼리 연결하는 다리가 돌다리, 나무다리, 물다리라면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는 말다리, 글다리이다. 

지금 글다리를 놓느라 애를 쓴다. 어떻게 만들어야 마음이 건너가는 다리를 편하고 튼튼하게 놓을 수 있을까? 쓴 글을 읽어보고 고치고 또 읽어보고 고치길 수십 번. 내 마음이 먼저 건너가 본다.

교각은 견고하여 글을 읽으며 중심이 잡히는지, 혹 이음매 부분에 못이 튀어나와 걸리는 곳이 있는지, 상판 바닥이 미끄러워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다 넘어질 염려는 없는지, 난간은 안전하게 설치되어 보기에도 안정감이 느껴지는지.

마음이 건너다니는 다리를 놓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마음의 무게는 얼마인지 부피는 얼마나 되는지 또 모양은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솔함을 기초로 한 말다리, 글다리를 세운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지나가도 안전하다. 특히 속을 다 볼 수 없는 물다리를 건너야 하는 글은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가장 안전한 다리를 놓았다는 뜻이 아닐까? 

[불교신문3516호/2019년9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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