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민속 순례] <15> 인도의 일생의례
[세계 불교민속 순례] <15> 인도의 일생의례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9.0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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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으로 통하는 문
신부의 가르마에 붉은 선을 칠하는 모습.
신부의 가르마에 붉은 선을 칠하는 모습.

첫 삭발의 의미

인도마을을 다니다보면 지붕이 마무리되지 않은 집을 흔히 보게 된다. 여러 세대의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면서, 혼인이나 출생으로 식구가 늘어났을 때 이층과 삼층을 계속 지을 수 있도록 열어둔 것이다. 인도사람들의 삶은 철저히 가족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개인은 이러한 혈연집단의 커다란 영향력 속에서 살아간다. 집안에 신을 모신 사당을 두어 가정은 신앙생활의 기반이 되며, 출생에서 죽음까지 중요한 마디마다 치르는 의례는 가족의 큰 관심 속에서 종교적 의미로 치러진다. 

그들은 남아선호사상이 깊은데, 이는 사회관습과 생사관이 결합된 단단한 구조를 지녔다. 부모를 봉양하고 노동력을 충당하며 대를 잇는 아들에 비해 딸은 지참금과 함께 시집을 보내야 할 존재인데다, 아들만이 부모장례를 주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회를 굳게 믿는 인도사람들에게 자신의 내세를 맡길 수 있는 존재로서 아들의 의미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출산은 생명을 맞는 성스러운 일인 동시에, 피와 관련되어 집안에 심한 부정(不淨)이 발생한다고 여긴다. 특히 탯줄을 자르는 것은 극도로 오염된 일이어서 탯줄을 자를 카스트의 여성이 동원되고, 며칠간 부정을 정화하는 민속과 의식이 이어진다. 부정이 심한 3일까지는 집안 곳곳에 반죽한 소똥을 칠해 정화하고, 3일이 지나야 브라만 사제를 청할 수 있다. 이때 사제는 부모와 아이에게 성스러운 물을 마시게 한 뒤 그들과 집안 곳곳에 성수를 뿌려 사람과 공간 모두에 대한 정화의식을 치르게 된다. 

산모와 아기는 산후 열흘 정도 격리된 다음, 사제를 모시고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식을 치른다. 아기의 발달단계에 따라 여러 의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삭발식이다. 생후 1년이나 걸음마를 뗀 다음, 또는 3ㆍ5ㆍ7세의 홀수 나이에 첫 삭발을 하는데 그때까지는 남자아이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땋아서 다녀야 한다. 

삭발은 사제가 신에게 바치는 불을 피워놓고 베다(Veda) 축원문을 염송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원래 아버지가 해주는 것이기에 몇 가닥만 손수 자른 다음 이발사에게 넘기는 것이 관례이다. 머리칼은 모두 깎지 않고 정수리 뒤에 한 타래를 남김으로써 장수를 기원하며, 깎은 머리칼은 신에게 바친다. 생애 최초로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삭발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신 앞에서 아이의 행복을 빌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함시키고, 온전한 개인으로서 신을 섬길 것을 서약케 하는 의식인 셈이다. 
 

격리기를 마친 유족이 강변에서 머리를 깎는 모습.
격리기를 마친 유족이 강변에서 머리를 깎는 모습.

카스트 공고히 하는 성인식과 결혼식

인도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인생을 네 단계로 받아들이는 관념을 지녔다. 첫 단계는 배우는 학생으로서 진리를 추구하고, 둘째 단계는 가정을 꾸려 재물과 쾌락을 따르며, 셋째 단계는 첫 손자를 보아 노인이 되면 은퇴하여 숲에서 삶을 관조하고, 넷째 단계는 사회적 책임을 마감하고 종교와 신을 찾아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다. 

첫 번째 학생단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리아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이때 학습기에 들어가는 ‘우빠나야나’ 의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 의식을 거침으로써 카스트 계급을 정식으로 인정받아 사회적 탄생을 맞게 되니 일종의 성년식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여성에게도 허용되었으나, 현재는 여성과 최하층 카스트 수드라를 제외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 세 계층의 소년에 국한되는 의식이다. 

의식을 치를 때 스승은 제자에게 세 줄의 성스러운 실을 걸어주게 되는데, 각각의 줄은 입문하는 자가 성인이 되면 갚아야 할 신과 스승과 조상에 대한 빚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를 성사식(聖絲式)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이 의식으로써 문화적ㆍ영적 재생이 이루어진다고 믿어, 점차 본래목적인 교육보다 재생의 통과의례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인도에서 결혼은 일종의 종교적 의무로서 독신인 자는 최하층의 카스트처럼 여기며, 딸을 결혼시키지 않고 적령기를 넘긴 부모와 장남은 지옥에 간다는 담론까지 형성되어 있다. 결혼은 성인식과 함께 카스트의 뿌리를 공고히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중매결혼을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부모 간의 합의로 같은 계급끼리 결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별, 저 별, 이 모든 별들. 모두 함께 반짝거려야 해.” 2004년의 인도영화 ‘우리의 조국’에서, 주인공이 카스트에 젖어 살아가는 이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구절이다. 제도적으로 없어졌지만 관습적으로 굳건한 ‘카스트’를 비판하며, 모든 별이 저마다 빛나듯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외침이다. 최하층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사회개혁을 이끌었던 암베드카르는 “나는 힌두로 태어났지만 절대 힌두로 죽지 않겠다”고 외치며 불교로 개종했다. 불평등과 평등, 카스트와 결합된 힌두교가 불교와 가장 큰 차이를 지닌 부분이다. 
 

갠지스 강변에서 만난 인도의 노인들.
갠지스 강변에서 만난 인도의 노인들.

불의 신 앞에서 맹세하는 결합 

인도의 결혼식은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서구식 드레스와 턱시도 대신 화려한 전통의상에 갖가지 장신구로 치장한 신부와 신랑의 모습은 먼 옛날 어느 왕실의 축제를 연상케 한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삼일 정도에 걸쳐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춤추고 분위기를 띄우며 부부를 축복해준다. 폭죽과 악기연주와 춤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년을 대동한 신랑이 백마를 하고 등장하는데, 요란한 행진은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자 삿된 기운을 쫓는 장치이며, 오염되지 않은 아이는 의례공간을 정화하는 존재이다. 

결혼식 전날에는 신부와 친지 여성들이 모여 헤나로 손바닥에 다양한 문양을 그리는 전통을 즐긴다. 신부의 이마에는 둥근 빈디(Bindi)를 찍고 가르마에 붉은 선을 칠해 기혼임을 표시한다. 결혼식은 대개 신부 집에서 저녁에 치르며, 성스러운 결혼식에 나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성수를 뿌리고 쌀알을 신랑신부의 이마에 붙이는 등 정화와 복을 비는 민속들이 다양하게 이어진다. 

사제의 집전으로 성화(聖火)를 가운데 둔 남녀가 부부를 맹세하면서 의식은 절정에 이른다. 이때의 신랑신부는 종교적으로 그들의 조상이자 수호신인 비슈누와 그의 아내 락슈미를 대신하는 의미를 지닌다. 신랑은 신부의 사리자락을 자신의 옷에 묶고 함께 불 주위를 일곱 바퀴 또는 일곱 걸음 돌며, 서로를 부양하고 자식을 돌보며 재산을 가꾸고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을 맹세하는 일곱 가지 서약을 한다. 불의 신이 그들의 맹세를 지켜보았기에, 결혼은 이로써 되돌릴 수 없는 신성한 결합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는 노인으로 진입해 영적인 삶에 집중하는 시기다. 아들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난 그들은 가정과 사회의 책무를 완수했다는 듯,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꺼진 것처럼 생업에서 물러나 삶을 관조한다. 긴 인생을 체험하고 소중한 목적을 추구하는 시기에 접어든 노인은 인도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심연을 알 수 없는 인도노인들의 눈빛은 걸인과 수행자, 동냥의 길과 수행의 길에 대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나란다대학 유적지에서 기도하는 불자들. 그림=구미래
나란다대학 유적지에서 기도하는 불자들. 그림=구미래

영혼을 해방시키는 화장

“잘 훈련되고 길을 잘 아는 동물을 거느린 신이 이제 당신을 조상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당신에게 적합한 것을 아는 불의 신 아그니(Agni)가 당신을 데려갈 것입니다.” 부모의 죽음을 맞은 장남이 화장터를 향한 행렬의 맨 앞에서 외우는 구절이다. 망자는 아들의 이 말을 들으며, 맘 편히 불에 태워져 낯선 저승길을 헤매지 않고 가게 되리라 안심할 듯하다. 

인도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통하는 문이다. 불로 태워 재가 되고나서야 영혼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여기기에, 그들에게 화장은 영혼을 몸에서 해방시키는 의식이다. 이러한 관념은 임종 무렵부터 시작되어, 몸을 구속하는 허리띠나 반지 등을 풀어 영혼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화장으로 시신을 태우는 중에도 두개골이 터지지 않으면 장대로 직접 깨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생명력이 뇌에 머물지 못하도록 완전히 소멸시켜 영혼을 보내주기 위함이다. 

그런가하면 망자의 편안한 내세를 위한 일련의 의식이 함께 따른다. 시신의 입에 성수와 툴라씨 잎 등을 넣어주고, 귀에다 성음(聲音)인 ‘옴’을 염송한다. 입에 넣는 것은 몸을 정화하는 의식이요, 주문은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또한 브라만이나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면 생전의 업을 씻을 수 있다고 여겨 암소를 비롯해 램프, 기름, 참깨씨 등을 나누기도 한다. 

화장은 사후 최대한 빨리 해야 하는데, 이는 시신이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주술적 관념 때문이다. 장례를 마친 유족 또한 카스트에 따라 열흘에서 한 달간 상중(喪中)에 머무는데, 이는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사회와 격리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출생에는 피로 인한 적부정(赤不淨)이 있었고 죽음에는 흑부정(黑不淨)이 따르니, 일생의 시작과 마지막은 성스러운 자연의 이치이자 부정이 따르는 위험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격리기를 마치고나면, 유족은 강변에 가서 머리를 깎고 목욕재계한 다음 공물을 올리며 망자가 조상의 세계로 편히 통합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이와 함께 유족 또한 일상으로 돌아와, 이후 기일마다 제사를 지내고 보시하며 죽은 조상을 기리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불교신문3516호/2019년9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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