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더 신뢰하는 당신, 진보주의자인가?

보일스님

청진기는 인간의 생로병사 그 자체다. 단순한 의료기기가 아니다. 의사를 의사답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매 순간 함께한다. 청진기 특유의 금속성 접촉을 통해 살아있음에 대한 차갑고 냉정한 진단을 수행한다. “태아가 건강합니다. 심장 박동도 정상이고요.” 새 생명의 건강을 확인한 가족들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숨을 한번 길게 내쉬세요.” 환자는 곧 이어질 의사의 선고와도 같은 진단을 기다리며 긴장한다.

청진기는 이 긴장의 심장 박동소리를 낱낱이 기억한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청진기는 생로병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해서,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임박한 죽음을 예고하기도 한다. 

➲ 청진기가 사라진다?

이제 그 청진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 마주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의미와도 같다. 즉 소위 ‘치유적 접촉’이 사라지게 된다. 의료현장의 변화는 이제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지금까지는 환자가 의사와의 인터뷰 이후에 주로 혈액을 통한 진단검사를 받거나, CT(컴퓨터 단층 촬영)나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 진단하는 ‘방사선 영상의학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인간 유전자 분석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빅 데이터 의학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청진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환자의 인체 정보를 다른 방식의 측정과 데이터를 통해 수집, 저장, 관리, 재생산까지 체계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 의료 현장의 모든 것은 인공지능이 통제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것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사하거나 동일 종류의 질환을 앓았던 환자들의 방대한 수치 데이터를 통해서 발병원인과 치료과정, 치료시기, 방법, 결과, 예후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청진기가 사라진 병원, 청진기를 목에 걸치지 않은 의사들이 모니터 앞에서 각종 데이터를 비교 검토한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시대 의료 혁명의 시작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이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변화가 아니다. 해일이 덮치는 것처럼 한꺼번에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와 같다. 
 

인류는 인공지능 딥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빅 데이터 의학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질병에 걸렸을 경우, 개인의 생체정보, 생활습관, 가족력 등의 개인차를 파악하여 그 진단과 치료를 최적화된 방식으로 맞춤화시키는 정밀 의료가 실현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인류는 인공지능 딥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빅 데이터 의학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질병에 걸렸을 경우, 개인의 생체정보, 생활습관, 가족력 등의 개인차를 파악하여 그 진단과 치료를 최적화된 방식으로 맞춤화시키는 정밀 의료가 실현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의료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먹고산다. ‘딥러닝’에서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현재의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은 바로 이 ‘빅데이터(Big Data)’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마치 과거 산업시대의 동력이었던 석유처럼 말이다.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시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터가 돈이고 권력이 되는 시대이다. 이 자원은 재생이 가능하고 고갈될 염려가 없다. 또한 기존 데이터가 가공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증폭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의 환자가 발병에서부터 완치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양의 데이터가 생산된다. 그것은 임상데이터로 저장되고 새로운 환자의 데이터와 상호비교 분류된다. 그리고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데이터로 확장된다. 새로운 자원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사에서 만든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렌즈에 닿는 이용자의 눈물을 센서로 감지한다. 그 눈물을 통해 혈당치를 비롯한 각종 질병의 위험지수를 측정한다. 그리고 그 분석 데이터는 구글 본사의 데이터 센터로 전송된다. 이 데이터 센터에는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구글 콘택트렌즈 이용자들의 눈물에서 추출한 질병 데이터들이 저장되어 있다.

이때 인공지능은 이 방대한 데이터들을 상호 비교하고 분류하여 의미 있는 정보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밀도 높은 데이터들은 해당 환자의 생체 활력 징후를 1000분의1초 단위로 그 변화와 추이를 감지한다. 최종적으로 데이터 센터의 전문가들은 연결 작업을 통해 질병 예측이 가능해지도록 한다.

이처럼 데이터의 홍수는 의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시스템과 의학의 융합은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미 현실 문제로서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적 의미의 병원에서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을 해주던 방식이 급격히 해체되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 파괴적 혁신 속의 인간의사 

이미 시작된 데이터의학시대에도 의사가 의학에 대해서 또는 의료, 의술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일까. 이제는 개개인 각자가 자신의 건강에 관련된 데이터와 인체 정보를 스스로 취합하고, 관리,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인간의 생체정보가 디지털화되고 그 관리와 활용이 자유로워지게 된다면 더욱 큰 변화가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의료서비스는 혁명적 대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료 인공지능이 그 중심에 있다. 붓다는 의왕(醫王)이라 불렸다.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인류사에서 의학적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인간 의사였다. 미래에 딥러닝 기반의 의료 인공지능이 의왕이 될 수 있을까? 의료 인공지능이 질병과 죽음의 고통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불자들은 정서상 인공지능의 진단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꼭 인간만이 질병에 대한 진단을 전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고정적으로 판단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의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질병에 대한 최종적인 선고를 내리는 것은 종교 감정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적 규제나 윤리적 책임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상대로 하는 치료 행위 등에서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손길이다. 소위 말하는 ‘휴먼 터치(Human touch)’ 즉 따뜻한 인간의 손길이 절실할 때이다. 환자의 고통을 헤아리고 공감, 소통할 수 있는 자비심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나쁜 뉴스를 언제, 어떻게 전할 것인가. 암 선고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환자는 우울증, 분노 장애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공감 능력이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무수한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결국 의료 인공지능의 임상적 효용과는 관계없이 의사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생체보수주의와 기술진보주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로서 정치적 관점이 충돌하는 기준점이 바로 인체 관련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친화성이다. 향후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인간이 첨단과학기술과 인체와의 결합 또는 의존도에 어느 정도까지 친화적일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것은 기술과 인체 그리고 인간의 정서적 측면까지 아우르는 매우 넓은 범위의 문제이다. 의료 인공지능은 바로 이 문제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 인공지능에 대해 정서적으로 친화적 입장이라면 그다음 단계의 생체기술에 대해서도 유연하고 열린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변혁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새로운 이념의 지형이 갈리기 시작하는 그 지점, 바로 의료 인공지능이다.

물론 인공지능의 진단을 더욱 신뢰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몸에 인공적 시술 내지 기계적 결합에 적극적이진 않을 수도 있다. 인간 의사보다 의료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는 당신, 생체보수주의 입장인가 기술진보주의 입장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 병고 없는 세상, 과연 축복인가? 

인간의 수명은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류의 기본적 생명의 구조까지 변화시켜도 되는 것일까. 생로병사라는 인간 삶의 기본적 구조는 숙명과도 같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영웅호걸이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꿈을 가졌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렇다면 이제 의료 인공지능이 인간의 무병장수 꿈을 실현해 줄 수 있을까.

현대 의료 인공지능의 등장과 빠른 발전 속도는 급기야 노화를 숙명이 아닌 질병으로 규정하기까지에 이른다. 인간 노화의 원인을 밝혀낸다면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구글은 자회사 캘리코(Calico)를 통해 ‘캘리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향후 20년 이내에 노화가 정복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벌거숭이 두더지가 평균적인 쥐의 수명보다 열 배가 넘고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서 인간 노화 억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글 벤처스 사의 빌 마리스(Bill Maris) 대표는 “만약 오늘 500살까지 사는 게 가능한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Yes)’이다. 생명과학이 우리를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가능한 생각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며 웃고 넘길 얘기였다. 현재 구글은 이러한 연구에 수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여기서 생겨나는 의문들은 수없이 많다. 영원한 삶을 통해 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노화와 질병에 의한 생애의 마감이 오히려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우리가 병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더는 고통 받지 않을까. 의료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와 같다.

[불교신문3515호/2019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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