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일전에 절에서 콩나물을 키운 적이 있다. 절에서 많이 먹는 반찬이 콩 요리인데 그중 하나가 콩나물이다. 시장도 먼데다가 방에서 가꿀 수 있는 나물이니 한 번 키워보자고 해서 시작했었다. 유년시절 방 한구석에 있는 콩나물시루에 부지런히 물을 주던 추억이 떠올랐다.

콩나물을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콩나물의 물주기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시루나 바구니에 앉히기 마련인 콩나물은 물을 주기가 무섭게 모두 바로 빠져 버린다. 이렇게 물이 빨리 빠져서야 그 물을 먹고 어떻게 콩나물이 자랄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콩나물은 쑥쑥 잘도 자랐다. 

조선시대 벽송스님이 계셨다. 스승을 찾아다니다 지리산에서 수행 중이셨던 당대 고승 정심선사를 만나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가르침을 주지 않자 스승의 공부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하산을 결심했다.

선사가 나무를 해서 돌아오자 공양주 보살이 다급하게 말했다. “벽송스님이 떠났습니다.” “왜 떠났는가?” “도를 가르쳐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떠났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안타까운 듯이 “무식한 놈,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나? 제 놈이 그 도리를 몰랐지. 자고 나서 인사할 때도 가르쳐 주었고 산에 가서 나무할 때도 가르쳐 주었지” 하셨다.

공양주 보살이 물었다. “그런 것이 도입니까?” “도가 따로 있나? 따로 있다면 도가 아니고 번뇌지.” 선사가 토굴 밖으로 뛰어나가 멀어지는 벽송스님을 소리쳐 불렀다.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선사가 빈손으로 허공에 무엇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또 한 번 크게 소리쳤다. “내 법 받아라.” 순간 스님은 크게 깨달았다.

수행은 습관이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이 몸에 배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깨달음의 등불을 켜기 위해 빛을 모으는 과정과 같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잠깐 스쳐가는 물에 젖기만 하는 콩나물도 오랜 시간 반복되면 자라듯이,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습관이 되면 결국 운명이 바뀐다. 

[불교신문3515호/2019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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