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상구보리 하화중생' 현장 ⑧
조계종 어산종장 혜천정오스님


출가 40년동안 범패 외길 걸어
행자 때 이미 상주권공 배우고
승가대 졸업 후 어산 본격 수학

의례는 교주를 찬탄하는 의식
출가자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의례 빠지면 종교 아닌 철학
​​​​​​​체계적인 교육 통해 전승되길

1980년 행자시절 동주스님으로부터 상주권공을 사사받은 것을 시작으로 출가해 40년 동안 범패 한 길만 걸어온 정오스님. 지금은 승가전문교육기관인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에서 학장소임을 맞아 후학들을 지도하며 범패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헌신하고 있다. 신재호 기자
1980년 행자시절 동주스님으로부터 상주권공을 사사받은 것을 시작으로 출가해 40년 동안 범패 한 길만 걸어온 정오스님. 지금은 승가전문교육기관인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에서 학장소임을 맞아 후학들을 지도하며 범패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헌신하고 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이른 새벽 예불 올리는 스님들을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교주인 부처님을 한마음으로 예경하고 공양 올리는 모습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난 2월 조계종 어산종장으로 위촉된 정오스님(포항 천곡사 농감)은 출가해서 지금까지 오로지 범패라는 한 길만 걸어왔다.

행자 때 상주권공을 배울 정도로 남다른 출발을 보여준 스님은 무형문화재였던 송암스님에게 범패를 배우기 시작해, 종단 어산어장을 지낸 동주스님에게도 사사를 받았다. 지금은 후학들을 지도하며 범패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헌신하고 있다. 스님을 8월9일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만났다.

“1980년 10.27법난 당시 행자생활을 했는데 그 때 동주스님에게 염불을 배웠다. 이듬해 승가대학에 입학하기 전 이미 상주권공 한 파트를 떼고 들어갔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 인연 때문이었을까! 범어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도반들이 선방을 가고 교학을 하고 외전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저는 염불이 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뒤도 안돌아보고 염불만 했다.”

40여 년간 수행자로 살면서 스님의 결정기준은 항상 염불이었다. 지금이야 종단 전문교육기관으로 어산작법학교도 있고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교육기관이 별도로 없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범패에 대한 열정 하나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보유자 송암스님(1915~2000)이 후학을 지도했던 평창동 효동범음대학을 찾아갔다. 졸업 후에는 영산재보존회 부설 범음대에 입학해 공부했고, 송암스님이 입적할 때까치 신촌 봉원사에서 범패를 배웠다.

스님은 “정말 미련스럽게 염불만 했다”고 했다. 공부하기도 어려웠지만, 염불하는 스님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지나온 시간을 회상했다. 스님은 바깥출입을 일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반을 만난다거나 모임을 나가는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염불만 했다.

서예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고자 마음먹었을 때도 염불 정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돌아섰다. “한번은 대금을 배워볼까 생각했는데 송암스님이 젓대를 불면 음성이 갈라져 소리 하는 사람은 하면 안된다고 일러줘 손도 대보지 않고 내려놨다”고 스님은 말했다.

사찰에서 소임을 맡을 때도 공부를 최우선에 뒀다. “파주 봉일천 삼보사라고 도반이 하는 포교당에서 예불만 봐주고 공부만 했다. 염불도 노력이 필요한데 부전소임을 살면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타고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는 안 되더라. 한 우물만 판다는 심정으로 했다.”

송암스님에게 어느 정도 배우고 정오스님은 다시 서울 사자암에 있는 동주스님을 찾아갔다. 어린이법회 지도법사를 하면서 연습했다. 일부러 염불하지 않는 소임을 맡았다고 한다. 소리를 계속 하면 목이 쉬고 갈라지기도 하는데다가 기도하는 신도들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피했다. 이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승무 예능보유자 법우스님이 있는 대전 현불사에서 3년 살면서 서울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했다.

1998년 포항 천곡사 주지 소임을 맡기 전까지 서울에서 배움을 이어간 스님은 영산재 시연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스님들도 지도했다. 행자교육원(현 사미사미니계 수계교육)에서 염불을 가르쳤고, 교육원 염불교육지도위원으로 기본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사미 사미니 스님들을 위한 염불교육과정과 교재편찬에도 참여했다. 승가전문교육기관인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 학장으로 스님들에게 염불을 가르치고 있다.

스님은 “의례가 빠지면 불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라며 스님들에게 보다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행자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행자기간에 천수경이나 기본예식을 갖추면, 수계교육 때 배운 것으로 종단의식이 통일될 수 있다”며 “그러나 입도 안 떼고 들어오는 행자가 더 많은 현실”이라고 실상을 전했다. 보고 배운 바가 없는데 사미.사미니계 수계를 받고 제대로 부처님 전에 의례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또 승가대학 교과과정 속 염불교육 기준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초등 교과과정 끝나면 중등과정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현 승가교육에는 단계가 없다. “기준을 중간쯤 잡아서 잘 하는 스님은 더 나갈 수 있게 하고 못하는 스님은 중간이라도 따라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최저점을 기준으로 잡다보니 아예 배우고자 하는 스님이 없다”고 한탄했다.

“옛날에는 승가대학에서 참회도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스님으로서 음성을 다졌는데 요새는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며 “목탁과 호흡이 하나가 돼야 하는데 목탁은 목탁대로 치고 호흡은 호흡대로 해서는 법회현장에서 신심이 증장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혼자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사중을 대표해서 불전에 기도하고 의식을 한다면 반드시 배워서 하라고 늘 말한다. “못하더라도 배워서 하는 게 교주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도들 중에는 스님만큼 뛰어난 염불실력을 가진 이들이 분명히 있다. 스님과 20년간 호흡을 맞춰온 천곡사 신도 중에는 웬만한 스님보다 염불과 독경을 잘하는 이가 많다. 초하루기도 때 <법화경>을 독송하는데 몇몇 신도는 스님이 부러울 정도로 음성을 낸다고 한다.

그런 신도들을 몰입시키고, 감흥을 일으켜 목소리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하나가 되게 하는 의식의 인례자가 바로 스님이다. 염불을 배우는 것 자체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정오스님은 “교주를 찬탄하는 의식도 못하고 교주를 예경하고 공양 올리는 의식도 못하는데 불교도라고 할 수 있냐”고 반문하며 염불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스님은 염불원의 활성화와 함께 염불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원에서 스님들이 참선하듯이 염불원을 통해 보다 많은 스님들이 염불정진에 집중할 수 있는 수행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염불의 기본을 배우는 ‘염불학교’를 만들어서 정해진 교과과정을 마친 스님들에 한해 부전이나 노전소임을 맡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스님이 법당에서 염불하는 것을 보면 행자 때부터 제대로 배우게 되고, 이후 사미 사미니계, 구족계를 수지해서도 의례를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스님은 지금 이 자리에 불보살님께서 나투셨다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의례를 한다고 했다. “의례를 하는 것은 교주에게 정성을 다해 법을 청하는 동시에 대중의 안녕을 기원하고, 신도들에게 복덕을 기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함이 아닌 부처님 법을 듣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임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찰 불사회향 법회에서 타종단 스님들이 의식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조계종 정화불사가 70주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정화의 정신은 무엇인지, 모든 불사의 회향과 개산의 법회에 타종단스님들을 모시고 법회를 거룩하게 하는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스님은 “가장 수승한 자리에 타종단 스님을 앉히고 조계종 스님들이나 신도들에게 타종단 스님을 찬탄하도록 하는 것이 조계의 가풍인가”라고 반문하며 “의식을 체계적으로 배운 조계종 스님들이 많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타종단의 스님들이 조계종단에서 의례를 해야 여법해지고 법답고 회향이 원만해지는가라고 우리는 조계의 가풍을 잊고자 한다면 청정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7년 37회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에서 스님들에게 염불의식을 지도하는 정오스님의 모습.
2017년 37회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에서 스님들에게 염불의식을 지도하는 정오스님의 모습.

정오스님은…
성타스님을 은사로 1980년에 출가했다. 1982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5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범어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했다.

스님은 행자 때부터 어산을 배웠다. 1980년 사자암에서 원명스님에게 상주권공을 사사받았고, 송암스님이 개설한 효동범음대학과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보존회 부설 범음대를 졸업하고, 범음대 짓소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제 43호 경제어산(京制魚山) 이수자이며, 경제어산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 염불교육지도위원, 의례지도의원 의례 문화분과위원 실무위원, 음곡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올해 2월 조계종 어산종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현재 포항 천곡사 농감이며,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에서 학장소임을 맞아 후학들을 지도한다. 연수교육 법계과정에서도 의례를 강의 중이다.

■ 범패란

범패는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의식음악으로, 범음·어산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진감국사 혜소스님이 범패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계총림 쌍계사에 전해지는 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에 따르면 804년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던 진감스님이 830년 돌아와 쌍계사에서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범패는 행해졌다. <범음종보(梵音宗譜)>(1748)에 다수의 범패승에 대한 기록이 이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다카하시가 1929년 발간한 <이조불교>에서는 20세기초 활약했던 스님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두 명의 만월스님이 범패로 유명했다. 한 명은 백련사 이만월스님으로, 백련사 이범호스님, 봉원사 이월화스님, 진관사 김운제스님이 제자다. 동교 이만월스님에게는 제자로 경국사 대원스님, 영도사 전우운스님, 신흥사 완담스님, 화계사 동화스님, 흥국사 표금운스님이 있다.

특히 이월화스님 이후 봉원사에는 많은 범패승이 활동했는데 김운파, 남벽해, 조덕산, 조일파, 최영월, 김화담, 박송암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송암스님 문하에는 조계종 동주스님과 동희스님 외에 태고종 구해스님, 일운스님 등이 있다. 조계종에도 동주스님, 동희스님과 함께 어산어장 인묵스님, 어산종장 법안스님, 정오스님, 화암스님, 동환스님 등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동주스님 문하에는 정오, 문현, 상연, 보천, 지성, 현준, 성운, 보정스님 등이 있다.

[불교신문3514호/2019년8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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