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 불교학 전공자의
‘조선대장경’ 엿보기
“한글 창제 주역은 스님들”
또 하나의 근거되는 책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정진원 지음 / 조계종출판사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10개월 만인 1447년 7월 칠석에 24권의 대작 <석보상절(釋譜詳節)>이 완성된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한글로 풀어쓴 저작으로 훈민정음으로 만든 최초의 간행물이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한글을 발명한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만든 작품이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 세종이 단숨에 노래를 지었는데 바로 600수에 달하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본한 책이다.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곧 세조가 1459년 기존의 석보상절을 다시 다듬고 거기에 월인천강지곡을 붙였다. 발간 순서로 따지면 ‘석보월인’이겠으나 효를 실천하려고 앞뒤를 뒤바꿨다. 최초의 조선대장경이라 평가받는 역작의 탄생이다. 초창기 한글의 모습과 한국어의 변천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는 월인석보에 대한 해설서다.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월인석보 스물다섯 권 중 첫 권을 현대국어로 옮기고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붙였다. 그는 홍익대에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주제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국어학자다. 석보상절은 부처님이 태어나 열반에 들 때까지의 일생과 살면서 남긴 설법을 요약했다. 최초의 훈민정음 불경이란 위상을 갖는다.

월인천강지곡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달이 하나이지만 지상에 있는 천 개의 강에 똑같이 도장 찍히는 것처럼, 부처님의 진리가 온 세상에 두루 비치고 있음을 천탄하며 노래한 것이다. 석보상절의 내용을 게송처럼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월인석보’에 최초의 한글본이라는 역사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불서로서만 봐도 매우 뛰어나다.

정진원 교수는 “만든 기간은 1년이 채 안 되지만 조선시대까지 유통되고 가장 많이 회자된 불교 경전,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경, 율, 론’ 삼장을 망라하여 엄선 또 엄선한 요체들을 모아서 ‘각별히’ 만든 책”이라고 강조했다. 
 

최초의 조선대장경으로 일컬어지는 ‘월인석보’ 본문.
최초의 조선대장경으로 일컬어지는 ‘월인석보’ 본문.

 

내용은 내용대로 높이 평가하더라도 ‘도대체 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부터 제기된다. 알다시피 조선은 유교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무장한 국가였다. 그러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그들이 완강히 배척하려 했던 이교도의 수장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일은 매우 모순적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소헌왕후의 죽음 때문이다.

1446년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해이지만 동시에 세종과 세조에게는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소헌왕후를 여읜 해이기도 하다. 나이 쉰의 아비와 서른의 아들은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해 그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아무리 ‘성리학적 질서’ 운운해도 뇌리에는 극락에 대한 믿음이 선명하게 박혀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지게 마련이다. 또한 세조만큼 업보가 무섭고 사후세계를 두려워할 사람도 없다. 실제로 월인석보 서문은 왕이 되기 위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참회로 가득하다. 살생을 일삼았던 그가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치유를 받는 사실에서, 그도 결국엔 불자였음을 알 수 있다.

“월인석보 1권의 이야기는 모두 10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을 읽노라면 108 염주 한 알 한 알을 실에 꿰듯이, 108배 한 절 한 절마다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느낌이 든다. 인생의 무상함이 사무치게 느껴지는, 그럴수록 걸음마 시작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떼듯 만고의 진리를 배우게 하는 글(여는 말에서).”

특히 월인석보는 스님들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다. 자문을 구한 인물들이 주석에 설명되어 있다. ‘혜각존자 신미(信眉), 판선종사 수미(守眉), 판교종사 설준(雪埈), 연경사 주지 홍준(弘濬), 전 회암사 주지 효운(曉雲), 전 대자사 주지 지해(智海), 전 소요사 주지 해초(海招), 대선사 사지(斯智),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등.

저자는 앞으로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설은 분명 논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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