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스님

춘추전국시대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했다. 평원군은 문무의 덕을 겸비한 수행원 20명과 동행하기로 하고 인재를 찾았다. 19명은 찾았지만 나머지 한 사람 마땅한 이가 없었다. 그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원했다. “제발 저를 수행원에 넣어주십시오.”

평원군이 말했다. “나의 문하에 몇 해 동안이나 계셨나?” “3년 됐습니다.”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으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처럼 그 끝이 즉시 나타나 남의 눈에 띄는 법이오.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때 모수가 말했다. “그러니 오늘 비로소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저를 조금 더 빨리 주머니에 넣어 주셨더라면 벌써 송곳 자루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재치 있는 모수의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마지막 수행원으로 임명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띈다고 하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 이야기다. 은유자적이라는 말처럼 시대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자신을 숨기고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살아도 그 재능은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재주와 시대를 아파하는 마음이라면 두꺼운 한쪽 주머니 속에서 뾰족함을 감출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예지로 세상을 맑혀보는 것이 더 좋지 아닐까 생각한다.

어둠과 밝음이 공존함으로써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밝음을 내어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시대가 혼탁해질수록 세상을 맑혀줄 영웅을 찾게 된다. 그런 영웅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소인이 아닌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밝은 대인이 되어야 하겠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나를 찬성하고 내게 비위를 맞추며 사는 사람보다 신념이 뚜렷한 그러나 그 날카로움을 숨기고 사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춰두어도 주머니 속을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세상의 곪아있는 한 부분을 그 날카로운 끝으로 콕 찔러주는 사람이기를 바래본다. 

[불교신문3513호/2019년8월2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