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점”

황건

불교신문이 배달되면 나는 우선 포장된 비닐을 벗기고 접힌 신문을 펴서는 내가 구독하는 타 일간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표지의 반대쪽인 마지막 면 쪽을 펴고 한 장을 넘기면 수직으로 배열된 사설과 그 옆에 수평으로 넓은 지면을 차지하는 ‘수미산정’을 먼저 읽습니다. 

여러 명의 위원이 교대로 집필하지마는 저자의 사진에서 삭발한 모습을 뵙게 되면 옷깃을 여미고 집중하게 됩니다. 스님 들이 쓰시는 칼럼은 내가 모르는 부분을 짚어주시는 경우가 많으며, 문헌을 찾아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교신문 ‘2019년 7월17일자(3504호)’ 수미산정의 ‘초기불교가 현대에 존재한다?’는 칼럼은 불교사에 어두운 나로 하여금 여러 해 전에 읽었던 문헌들을 찾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됐나, 공부해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어, 나 이외에 댓글을 달거나 이에 공감한 독자 등 여러 분들도 역시 궁금해 하실 것으로 생각돼 이 지면에 여쭈어 봅니다.

저자는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숫타니파타>와 <법구경>, <장로게·장로니게> 등은 모두 기원 전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승석에 따르면(불교경전의 이해, 불교신문사), <숫타니파타>의 주요 부분인 시로 된 부분의 언어는 당시 다른 속어(마가다 어)의 영향이 인정되므로 아쇼카왕(기원전 3세기 후반) 이전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문을식에 따르면(불교경전의 이해, 불교신문사), 장로(니)게경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의 장로, 장로니의 작품을 제자들의 말씀으로 정리하여 전해온 것이며, 이 중에는 늦게, 즉 교단성립 후 100년 혹은 아쇼카왕 이후에 중에 성립된 부분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1997년 불교신문에서 발행된 책의 내용과 저자의 내용이 다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저자는 “<숫타니파타>와 <법구경>, <장로게·장로니게>등으로 초기불교를 공부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으며, 이는 고려 중기에 찬술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가지고, 삼국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와 기록 사이에 시간간격이 존재하므로 사료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삼국통일(676년) 후 600여년이 지난 뒤 발간된 <삼국유사(1281~83년 추정)>를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염중섭. <三國遺事』五臺山 관련 기록의 내용분석과 의미Ⅰ: 慈藏의 文殊信仰을 중심으로.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제 101호 81~125, 2011). 이 논문에서 저자는 <삼국유사>의 오대산 관련 기록은 오대산 신앙의 의미부여라는 관점에서 다소 변형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충분한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오대산신앙 중심의 자의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도 자료로서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고대사의 기록은 지극히 제한적이기에, <삼국유사>의 오대산 관련 기록들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식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고대사에 대해서도 보다 풍요한 지식을 획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저자의 칼럼 중 “<삼국유사>를 가지고, 삼국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저자가 2011년도 논문에서 주장한 바와 상반되기에 논문작성 당시와 지금의 시각이 다르신지 알고 싶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언급되는 사마천(기원전 145~86 추정)의 <사기(史記)>는 상고의 황제로부터 전한의 무제까지의 2000여 년의 역사가 기록돼 있는데, 이러한 기록을 무시하고 우리가 수백, 수천 년 전 생활과 사상을 공부할 수 있겠는지요? 

스님께 감히 여쭈어 보는 바입니다.

[불교신문3512호/2019년8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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