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재

일이십 대 여성에게는 ‘예쁘다’는 찬사만큼 큰 축복은 없다. 그건 분명 행운이고 프리미엄이다. 당연히 젊은 여성들은 기를 쓰고 예뻐지려고 한다. 요즘은 성형의학의 눈부신 개가로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미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오죽하면 부모는 날 낳아주고 성형의사가 날 만들어주었다고 할까.

하지만 조물주는 태어남에서는 차이를 두었을지라도 시간 앞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예쁘든, 평범하든 나이 들어가면서 모두 늙기 때문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역행해보고자 여성들은 사오십 대를 넘으면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기 위해 기를 쓴다. 근자에 들어 ‘동안 열풍’이라는 사회적인 신드롬까지 일자 가장 효과 좋은 해결책으로 미용성형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중년여성들이 주름제거를 위해 얼굴에 칼을 대는 것을 터부시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모하지 않을 텐데, 수술의 위험성은 차치하고 굳이 부자연스러움까지 떠안으며 성형에 집착하는 여상들이 허황되고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데 투자하기보다 자신의 내적인 삶의 질에 열정을 쏟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부터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었을 때 “어머, 나이보다 젊어 보이네요”라고 했을 때는 은근히 기분이 좋다. 반면 내 나이를 실제보다 많게 보게 되면 그 사람을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그렇다. 여성은 나이 들어갈수록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인 것이다. 그 안에는 예전 유한계급이 노동계급에 비해 피부가 희고 주름이 덜 진데서 오는 각인된 인식이 자신은 남들보다 편하고 여유롭게 살아왔다는 우월감으로 투사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미간주름, 눈 밑 처짐, 팔자주름 등 신경 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주름을 두려워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갈 것인지, 거울 보며 한탄하느니 과하지 않는 선에서 성형하는 게 나을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만큼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512호/2019년8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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