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본래 ‘직지’에서 나왔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민족적 자긍심 ‘환기’

직지 - 아모르 마네트 1 · 2권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직지(直指)’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불서다.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상하 2권으로 인쇄됐으나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서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금속활자본인 독일의 인쇄업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섰다. 직지가 발견되지 전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는 영예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지-아모르 마네트>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시대 직지에서 나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장편소설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저자는 신간에서도 민족적 자긍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중세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작품이다. 현대 과학의 성과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금속활자의 전파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다가선다. 낯익지만 늘 흥미로운 추리소설의 구조다.

평온한 주택가에서 경악스러운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귀가 잘려나가고 창이 심장을 관통하는 참혹한 시신이다. 더 놀라운 것은 피가 빨렸다는 점이다. 드라큘라에게 당한 듯 목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다. 피살자는 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다. 사회부 기자인 기연은 기괴한 살해방식에 강한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고든다.

결국 피살자가 죽기 직전에 교황청의 비밀 수장고에서 발견된 편지의 내용을 해석해냈다는 단서를 잡는다. 사건현장을 살피다 살해당한 교수의 서재에서 두 개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가 생전에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 프랑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엔 기연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전
 

'직지-아모르 마네트'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직지 원본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직지-아모르 마네트'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직지 원본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금속활자는 지식혁명의 시작이었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비약적 발달로 인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실은 우리의 ‘직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이라는 상상력에서 만들어졌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미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어났을 법하거나 일어났어야 하는 ‘대체역사’를 소재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글쓴이다.

이번에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를 발휘한다. “유럽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동방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일단의 수도사들이 교황에게 자신들이 본 금속활자의 그림을 선물했고, 그 직후 유럽에 금속활자가 확 퍼졌다는 거지요.” “아! 그러면 그 동방의 어느 나라가 바로…….”(1권 56쪽)

김진명 작가는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데뷔작으로 1993년에 출간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불교계로선 유명작가의 소설을 통해 위대한 문화유산인 직지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1995년 “한국은 금속활자 발명과 디지털 기술로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었다. 김진명 작가는 신작을 통해 듣기는 자주 들었지만 정확한 의미와 위상은 잘 모르는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선보인다. 나아가 ‘직지’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에 담긴 정신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지식과 정보를 지배층의 독점에서 해방시켜 전 인류가 함께 나아가자는 것. 궁극적으로 지식혁명을 이끈 한글과 직지에 새겨진 ‘여민(與民)’의 정신이 대한민국을 디지털 강국이자 반도체 1위 국가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종종 최고(最古)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서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일관되게 인류의 지식혁명에 이바지해왔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작가의 말).” 민족주의가 크게 달아오른 시점에서 얼마나 많은 반향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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