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격화되는 가운데 진제 종정예하가 양국 정부 지도자의 현명한 대처를 촉구하는 교시를 발표했다. 종정 교시가 종단에 급박한 현안이나 갈등이 벌어졌을 때 나오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교시는 특별하다.

교시는 “불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픔과 슬픔과 고뇌를 국민과 함께하여 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략으로 국민이 도탄에 빠졌을 때 국민의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각자 조성하면서 국난을 극복하였고,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서산·사명·처영 대사께서 일본과 화친을 맺어 구국호국하신 정신을 이어받아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한중일 불교협의회를 통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교시는 이처럼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호국불교역사에서 근거를 찾았다. 종정예하는 이번 한일 경제 전쟁을 몽고 침입, 임진왜란에 버금가는 국가적 재난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전쟁은 무기를 동원해서 살상했지만 오늘날에는 경제가 무기다. 국제적으로 긴밀히 협업하는 오늘날 세계 경제 체제에서 경제는 한 국가의 명운과 국민 생명을 좌우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과거 살상무기와 다를 바 없다.

중남미나 중동의 일부 국가 국민들이 경제난으로 자국을 떠나 세계를 떠돌다 죽음에 이르는 참혹한 실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일본과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한국으로서는 일본과 경제 갈등을 겪는 것은 나라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정예하가 과거 국난을 거론하며 불교계의 현명한 대응을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시는 또 “한일 양국의 정치인은 상대적 대립의 양변을 여의고 원융무애한 중도의 사상으로 자성을 회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해법도 제시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모두 하나며 연결돼 있다. 자연 인간 사회가 모두 그렇다. 상대적 시각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고 승패를 가른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성공하고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끝없는 갈등과 고통을 겪다 모두 파멸에 이르는 것이 나와 상대를 분리하는 세계관의 결말이다. 벌써 그 조짐이 양국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한국 관광객의 감소로 고통을 받기 시작했으며 한국은 작은 기업과 일본과 관련 깊은 회사의 한국인 종업원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종정예하의 교시대로 “우리 불교는 국가와 민족의 구분 없이 동체대비의 자비실현과 사바세계 생명평화를 영구히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한중일 동북아 삼국을 연결하는 공통점은 불교다. 세 나라 모두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가장 앞세우는 대승불교 전통을 지녔다. 모든 나라가 잘 사는 길은 자국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돕는데 있음을 세 나라 불교가 앞장서 실천할 때이다. 종정예하의 교시가 주는 핵심 가르침은 여기에 있다.

[불교신문3511호/2019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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