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생물들은 비실거리고
텃밭 절반이 풀에 짓눌러져
애지중지하던 ‘내 새끼’들이
머잖아 죽음에 이를 것 같았다

때 늦은 후회지만
나는 달음박질로 마트에 들러
생수 세 박스를 배달시켰다

안혜숙

빈 텃밭이 풀밭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문득, 세상 모든 믿음의 시작이 자연을 섬기는 것에서 시작했다면 ‘창조는 어렵고 모방은 쉽다’는 콜럼버스 말은 정답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모방이 아닌 창조적 텃밭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상추와 고추 몇 포기로 시작해볼 요량으로 손바닥 길이만한 모종들을 사다가 호미자루로 땅을 팠다. 하지만 맨땅에 풀 뽑는 일은 쉽지가 않아서 한 뼘 정도만 풀을 뽑고 그 자리에 구멍을 뚫어 모종들을 심었다. 그리고 대단한 창의력이라는 자부심으로 이웃 텃밭들을 넘보면서 이왕이면 ‘좀 더’라는 욕심에 호박, 토마토, 오이 등으로 가지 수를 넓혀갔다. 

새벽 텃밭은 하루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매일 물주기는 기본이고 풀 뽑기는 딱 한 시간으로 정했지만 잎이 무성해지면서 벌레잡이도 한 몫을 하더니, 다음 차례는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호박이나 오이 같은 넝쿨들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비닐봉지로 새끼줄을 만들어 지릿대에 감아주는 일까지…. 어느덧 밭일은 내 일상이 돼버렸다.

그러나 가뭄이 들면서 물주기는 저절로 포기상태에 들어가고 생물들은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여름장마를 예상했던 비 소식은 유독 강화도만 예외였다. 가뭄은 7월초부터 한 달 가까이 한두 차례 검은 구름이 비추다가 금방 햇빛이 자리를 밀고 나오고, 그러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이 비추었다가 또 햇빛이 슬쩍 숨어버리고, 다음 날은 먹구름이 밀고 나오는 것 같지만, 새벽이슬처럼 풀잎만 적시고는 정작 비는 꼭꼭 숨어서 마치 술래잡기 하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이면 발길은 저절로 텃밭으로 향하고, 부슬부슬한 흙덩이를 보면 처음에야 목이라도 축이라는 심정으로 삼다수병을 들고 텃밭에 들어가 뿌리마다 물을 끼얹어주었지만, 염분도 없는 생수가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고, 막상 손 씻을 물도 없는 형국이 되다보니 그 마저도 포기하고 말았는데, 결국 오늘 아침은 기어코 사단이 나고 말았다. 

담벼락을 가리는 녹수 풀이 허리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죽어 넘어진 풀을 살펴보니 줄기 속이 바싹 말라 타들어가 죽은 것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텃밭 절반이 풀에 뭉개지고 짓눌러져 내 새끼처럼 애지중지하던 생물들이 머지않아 죽음에 이를 것 같았다. 때 늦은 후회지만, 마을 어른들 말을 들었어야 했다.

녹수 풀을 담장에 옮겨 심는 걸 보고, 그 풀은 장희빈이 먹었던 사약풀이라고, 그 뿌리가 인삼뿌리 같지만 독약이라 조심해야 된다고, 풀이 무슨 담장이 되냐고 말렸었지만, 나는 둥글넓적한 연둣빛 이파리와 굵은 줄기가 나무 같아서 말을 듣지 않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심란한 마음으로 텃밭을 등지고 어슬렁거리며 논두렁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푸드득,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에 그만 발을 멈추고, 두 손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후, 새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 놀란다. 텅 빈 하늘만 보일 뿐 새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새들이 떠오르고, 순간 텃밭에 쓰러져 있던 생물들이 눈앞을 스치면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대로 두면 죽을 텐데’로 이어진 생각은 저 새들처럼 사라져버린다? 나는 후다닥 해안도로를 벗어나 달음박질로 마트에 들러 생수 세 박스를 배달시켰다. 염분이 있든 없든, 목마른 생물들에겐 어떤 물이라도 생명수가 될 것이다. 집을 향해 다시 달음박질을 하면서 계속 중얼거린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창조물이라고….

밤이 늦도록 생수병을 텃밭에 부어주느라 정신이 없는데, 툭툭, 텃밭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만 더 기다릴 걸, 그러나 금방 마음을 고쳐먹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불교신문3510호/2019년8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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