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진실한 행은 오직 중생이익

뱃사공 바시라, 무상승 장자도
‘중생을 다 건지리라’ 서원아래
선재에게 또 다른 선지식 추천

 

원욱스님

선재는 누각성을 향해가며 길의 높낮이가 다름과 평탄하고 험한 모습, 깨끗하고 더러운 모습, 곧은 길, 굽은 길들을 바라보며 내가 선지식을 찾아가는 것도 이와 같구나. 선지식은 내게 중생을 바라볼 때 중생의 차별한 모습을 알아차리는 지혜로 중생의 욕망도 각기 다르니 그들을 돕는 방법도 다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길은 하나이지만 방법은 다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역시 선지식은 우리에게 보살도를 행하는 길을 수행하여 성취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분임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누각성의 뱃사공인 바시라는 바닷가 언덕에서 무역상들에게 바다에 관한 정보와 바다를 건너가는 방법,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속득 공덕을 지어 벗어나는 길까지 일러주고 있었다. 선재는 앞에 나아가 선지식에게 보살의 진실한 행을 여쭈었다. 

“오, 선재여, 그대는 이미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보살의 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간다는 것은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부처님처럼 청정한 삶(지계바라밀)의 길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바다로 함께 나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열심히 돈을 벌어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기쁨을 주었다.

생활과 마음이 안정이 된 뒤에 다른 사람을 돕게 하는 선근의 공덕을 가르치고, 보리심에 대해 말해주고, 보리원을 지니게 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했듯이 바로 가난한 이를 보면 그와 같이 하더라.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렇게 모아 놓고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 있는 보배의 섬들과 종류, 채취한 다음 연마하여 귀한 보물을 만드는 법과 사용법, 그리고 바다의 위험성과 안전한 곳으로의 피신법, 조난자를 구하는 방법, 태풍이 오는 법을 미리 알아차리는 법, 폭풍 속에서 살아남는 법, 바다의 물 흐름을 보면서 나가야할지, 멈추어야 할 지 빠르게 판단하는 법을 일러주며 중생을 이익하게 한다. 

나는 큰 배를 운영하지만 단 한 번도 실수하여 중생을 고난에 빠지게 한 적이 없다. 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바다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중생을 지혜의 바다로 인도하거라. 지혜의 바다에서 중생의 고통바다는 끝이 난다. 그러니 중생의 근성에 따라 안성맞춤으로 그들을 인도하라. 나는 다만 ‘중생들이 삼보에 대한 깊은 신심을 부서지지 않게 다스려 선근을 증장시키고 이익을 얻게 하는 무너지지 않는 회향(不壞廻向)’만 이렇게 얻었다. 그 공덕의 행에 대해선 나보다 가락성의 무상승장자에게 묻거라.”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선재는 즉시에 무상승장자를 찾아갔다. 가락성은 ‘지혜의 성’인데 그 곳 거리에서 무상승(無上勝)장자는 모든 생활용품과 보석으로 상업을 하는 이들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활법문을 하고 계신 분이다. 보살도를 묻는 선재에게 무상승이 말한다.

“선남자여, 어떤 것이 보살의 길인가? 나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욕심 있는 중생들에게 사견을 버리고 성내지 않고 싸움을 멈추며 화해하여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한다, 마치 이 장터에서 툭하면 시비가 일어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투쟁하듯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벌고 있는 것보다 두 배정도의 이익을 내게 해주면 그들은 만족하며 여유를 지니게 된다. 그 때 나는 살생과 싸움 등의 모든 악업을 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기술을 가르쳐 세상을 이익 되게 사는 법, 보시하여 공덕을 짓게 하고 환희심을 일으킨 뒤에 훌륭한 지혜의 말씀을 전했다. 이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부처님처럼 인욕하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중생들을 변화하도록 돕고 그 길을 열어 부처님의 법 안에 들게 하였다.

늘 이렇게 하여 나는 ‘모든 부처님과 평등하게 회향하는 법문(至一切處修菩薩行淸淨法門)’을 이루었다. 하지만 나는 이 법문을 통해 보살이 의지하거나 지음이 없는 신통한 힘만 겨우 알 뿐, 저 보살들의 자유자재한 신통으로 하는 모든 공덕행에 대해선 남쪽 수나국의 가릉가 숲속의 성에서 살고 있는 사자빈신비구니 스님에게 여쭙거라.” 

선재로 하여금 매번 길을 떠나게 하는 선지식들을 통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인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때가 되면 그들은 떠난다. 떠나는 그들을 복잡미묘한 느낌으로 바라보지 말고 다른 선지식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하며 모든 보살의 진실한 행은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니 마음에 아쉬움보다는 사홍서원의 ‘중생을 다 건지리라’는 서원을 사무치게 새겨본다.

[불교신문3509호/2019년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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