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초하루 법회 때 오랜만에 오신 노보살님이 계셔 인사를 드렸다. “보살님 오랜만에 오셨어요. 어디 멀리 다녀오셨어요?” “어디 가기는요. 농사에 영혼을 팔아 올 시간이 없었습니다.” “농사에 영혼을 팔아요?” 순간 영혼에 찌릿하고 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면 영혼을 팔 정도로 일을 하신단 말인가? 그리고 시골 할머니의 입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싯구가 나올 수 있다니···. 마치 부처님께서 노보살님의 입을 빌어 공부점검 나오신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영혼을 판다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삼매에 드는 것이다. 수행을 하든, 일을 하든, 혹은 사랑을 하든지 오롯이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효봉선사는 정진삼매에 들어 엉덩이가 짓물러 터져 방석이 달라붙어도 모를 정도로 피눈물 나는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절구통 수좌’였다.

삼매에 든다면 무엇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물을 끓일 때 약한 불은 온종일 끓여도 데워지기만 할 뿐이지만 펄펄 끓이려면 화력을 높여야 한다. 마치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울 때 초점만 잘 맞추면 금방 불이 붙지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하루 종일 비춰도 불이 붙지 않는 것과 같다. 

수행에 영혼을 팔지 못한 나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다. 공부 한답시고 애를 쓴 적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혼을 팔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삶에 지쳐 고단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회향을 한 것도 별로 없다. 마음은 늘 앞서 가지만 막상 그 일 앞에 서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현실과 타협을 하곤 했다. 제대로 밥값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 부처님 전에 세배를 드리면서 더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을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추가 지났다. 언제까지 불을 때는 둥 마는 둥 미지근하게 살수는 없다. 물도 장작이 영혼을 바쳐야 끓는다. 다시 한 번 정진의 가마에 장작을 더 집어넣어야겠다. 

[불교신문3509호/2019년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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