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은 그 집의 치마요
그 밭이 두른 치마다
어찌하다 담 구멍으로
집안 사정이 다 보여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제주 돌담은 소통의 구멍
돌담 구멍은
비밀 서랍 구실도 했다
제주 돌담은 소통의 구멍이다. 제각각의 돌들을 쌓아 만든 담 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들며 안소식과 바깥소식을 전하고, 사람의 말소리가 드나들며 내 집 이야기 네 집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가끔 그 구멍으로 이웃에 별일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구멍에 손나팔 대고 친구를 불러 사탕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받아먹기도 했다.
돌담 구멍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이따금 뱀이 벗어 놓고 간 허물이 헌옷처럼 발견됐다. 돌담 구멍에서 바람에 부르르 떠는 그 헌옷이 징그럽고 무서워 멀찌감치 돌아가기도 했다. 뱀도 자기 몸에 맞는 구멍을 찾아야 옷 벗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알고 담을 넘는 게 아니라 돌담 구멍을 통과했다.
웬만한 바람에 넘어가지 않던 돌담도 태풍이 불면 무너지기도 한다. 활화산이던 한라산이 뿌린 모양 그대로 척척 올려 아퀴를 지은 담은 성글어 아무렇게나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끼리 얼마나 이가 잘 맞는지 의외로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뭐 넘어지더라도 또 쌓으면 되고. 담 안으로 드나드는 길을 내려고 돌담을 쉽게 헐기도 하고 쌓기도 하니 레고 블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블록은 인공, 돌담은 자연이다.
큰바람이 지나가면 아버지는 밭담을 한 바퀴 돌면서 무너진 곳이 없나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아마 제주 아버지들의 큰 일과였을 것이다. 무너진 곳을 그대로 두면 지나가던 소나 말이 들어가 밭작물을 망가뜨리니 담을 튼튼하게 채비하는 것이었다.
돌담은 그 집의 치마요 그 밭이 두른 치마다. 감히 누가 그 치마폭을 들춰볼 수 있을까? 소나 말도 돌담이 무너진 곳이 아니면 넘보지 않았다. 단순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담장이 둘려있고 거기에 정낭이라는 나무 막대기 세 개면 울타리, 대문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것 아닌가. 어찌하다 담 구멍으로 집안 사정이 다 보여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그 옛날 집마다 똥돼지를 기를 때, 가림막이 없는 통시 디딤돌 위에서 볼일을 봤다. 그렇다면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을 텐데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다. 아마도 구멍이 스스로 열렸다 닫혔다 하며 보아야 할 것은 보여주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여주지 않는 마술이라도 부렸나보다. 소리도 마찬가지로 들어야 할 말만 구멍을 통하여 건너다니는 것이었다.
돌담 구멍은 비밀 서랍 구실도 했다. 한 번은 동생이 할머니 주머니에 손을 댔다. 이를 할머니가 아시고 아버지 어머니 몰래 그 밤으로 비밀 서랍을 찾아 나섰다. 학교 가는 길목 돌담 구멍에 끼워 둔 지폐를 할머니와 나는 동생을 앞장세워 기어이 찾아냈다. 그날 혼쭐이 난 동생은 다시는 할머니 주머니를 건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 일을 모르고 계신다. 동생도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왜 할머니가 돌담 구멍에서 꺼내던 그 지폐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그 일로 할머니는 동생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토닥이며 더 예뻐해 주셨다.
요즘 제주에 가면 어릴 때 성곽처럼 보이던 밭담들이 야트막한 경계로만 남아있다. 점점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월 청보리가 출렁이는 것을 돌담 구멍으로 보는 맛이 없어졌다. 분홍 깨꽃이 차례대로 올라가며 피는 걸 담 구멍에 매달려 보고 싶은데.
담이 높아지는 게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만 추억을 찾아가는 길에 추억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모든 것이 변하고 뒤집히는 세상에 낮은 돌담이나마 남아있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돌담을 어루만져 보면 보기에는 무척 거칠 것 같은데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불교신문3508호/2019년7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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