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② 장곡스님의 어린이포교
[한 장의 사진] ② 장곡스님의 어린이포교
  • 박봉영 기자
  • 승인 2019.08.05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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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열정의 젊은 시절 ‘시골 절 유치원’…지금은 격세지감

3년전 논산 관촉사로 삼사순례를 다녀온 신도가 사하촌 노점상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을 장곡스님(대전 백제불교회관 관장)에게 전했다. 순례 온 불자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던 할머니는 백제불교회관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곤 장곡스님이 ‘관촉사 전설’로 통한다고 했다. 장곡스님이 관촉사 주지로 있을 때가 최고 전성기였다는 그 할머니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장곡스님은 20대 대학 졸업 후 첫 주지 부임을 받은 논산 관촉사에서 역경을 딛고 읍내에 유치원을 개원했다. 생일상 케이크가 귀하던 1986년, 유치원 원아들의 생일잔치에 참석해 촛불을 켜는 모습이다. 지금은 이 아이들이 40대에 접어들었다.
장곡스님은 20대 대학 졸업 후 첫 주지 부임을 받은 논산 관촉사에서 역경을 딛고 읍내에 유치원을 개원했다. 생일상 케이크가 귀하던 1986년, 유치원 원아들의 생일잔치에 참석해 촛불을 켜는 모습이다. 지금은 이 아이들이 40대에 접어들었다.

 

1   1973년 서울, 고등학교 1학년이던 장곡스님은 충남 장항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출이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서천 판교역에서 내려 곧장 부여 무량사로 향했다. 아는 절이 무량사 밖에 없었다. 부여가 고향인 장곡스님은 초등학교시절 무량사로 소풍을 가곤 했다. 그 길로 출가의 길을 걸었다. 다시 속가를 찾은건 가출 3년째 되던 해 주민등록증을 받기 위해서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니게 됐다. 승복을 입은 채였다. 총무원이 동국대에 있던 그 시절, 조계사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1980년대 계층포교가 붐을 이뤘다. 계층포교는 중장년층의 주신도층 외의 청년부와 대학부, 학생부, 어린이부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눈높이 포교다. 정화라는 현대사의 질곡을 거치고 비로소 종단이 틀을 잡은 뒤에야 본격적인 계층포교가 시작됐다. 

이미 1970년대부터 계층포교가 시작된 서울과 달리 농촌지역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바람을 탔다. 1981년 동국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논산 관촉사 주지로 부임한 장곡스님은 가장 먼저 신도조직을 정비했다. 신도회가 제대로 운영되는 사찰이 드문 시기다. 

2   지금은 이름 꽤나 알려진 사찰이지만 이 때까지 관촉사는 시골절에 불과했다. 논산도 군이었다. 20대 첫 주지로 발령 받은 장곡스님은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다. 신도를 규합하기 시작하며 신도회를 새롭게 조직했고, 고등부를 중고등부로 확대개편했다. 고등부 동문들을 모아 청년회를 만들고 어린이부까지 신설해 지역 최고의 절을 만들어냈다. 은진미륵부처님으로 유명한 관촉사는 이때부터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산읍내 포교도 시작했다. 군청 앞에 건물을 임대해 읍내 포교 전진기지를 마련했다. 전법도량의 성격이었다. 이곳이 유치원이 됐다. 허가를 얻는 2년 동안 시범운영하며 논산지역 어린이포교의 첫발을 내디뎠다. 개신교와 천주교 유치원이 이미 몇곳 운영 중이었는데 불교유치원을 만들겠다고 뛰어들었지만 허가가 나질 않았다. 주변 여건상 유치원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장곡스님은 다른 유치원을 돌며 비교분석했다. 다른 유치원도 허가가 날 수 없는 조건인데도 이미 운영중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파고 들었다. 교육감에게 편지도 썼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84년 논산읍내에 관촉사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충남지역 군 단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3   당시 유치원과 어린이부에서 활동하던 세대가 지금 40대에 이르렀다. 포교활동이 미진한데도 불교가 늘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것은 아마도 이런 씨앗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유치원 앨범을 살피던 장곡스님은 생일잔치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왜 지금은 그때처럼 하지 못하는가. 지금 어린이부와 중고등부 법회를 운영하는 사찰이 많지 않다. 격세지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예전만 못한 현실이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관촉사 유치원의 역사를 보면 지금의 포교 현실이 그대로 엿보인다. 1985년 첫 졸업식을 열었던 관촉사 유치원은 현정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5년 전 아예 문을 닫았다. 관촉사가 유치원 운영을 포기해 논산읍내 현정사로 운영권이 넘어갔다가 이마저 폐원한 것이다.

폐원 신고차 교육청에 연락을 했는데 담당직원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새로 허가를 얻으려면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쉽지 않으니 그냥 갖고 있으라고 권유했다. 장곡스님은 포교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당장의 이익만을 좇는 승가의 현실을 절감했다.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하는 것인가.

장곡스님의 다음 부임지는 부여 고란사와 공주 갑사다. 부여읍내 불교문화원과 대전 백제불교회관이 모두 이 때 이뤄진 불사다. 이제는 젊은 세대 스님들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대전=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불교신문3508호/2019년7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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