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무소유제’나 ‘교구공영제’가 방안

일률적 사찰재정 개혁 한계
사찰특성 살린 세부안 필요
다양한 형태 결사체 도입해
경쟁 유발, 관행혁신도 방법
소외 방치하면 더 큰 문제
승가공동체 회복 과제 엄중

승가공동체 관련 기사를 보고 지방의 어느 스님이 전화를 했다. 스님은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한데 부드럽게 다룬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스님은 청춘을 바쳐 일군 사찰에서 두 번이나 쫓겨나 이제 경북의 산골 도반이 있는 토굴에 간신히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됐다며 한숨 지었다. “돈 생기면 불사에 쏟아 붓는 나를 보고 도반들이 말렸지만 아랑곳 않고 불사에 매달렸는데 이렇게 쫓겨나고 보니 이제 나이 들어 힘도 없고 갈 곳도 없다”는 것이다. 스님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문도도 없고 힘이 약하다 보니 당한다”는 스님은 “옛날에는 비구니스님들이 절을 지으면 쫓겨난다고 했는데 이제는 비구도 안심 못하는 시절이 됐다”고 했다. 

종단 운영이 투명해지고 언로가 열려 있으며 민주제가 정착된 지금 스님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는 이 스님의 결말은 ‘힘’, 즉 권력이었다.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연이 없어 청춘을 쏟은 사찰에서 밀려났다는 것이 스님의 자책이다. 
 

부처님 본래 가르침 대로 돌아가면 간단한 승가공동체 회복이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조계종 근간을 만든 문경 봉암사 결사 주역 청담 성철 향곡스님 모습에서 진정한 승가공동체의 길을 생각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부처님 본래 가르침 대로 돌아가면 간단한 승가공동체 회복이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조계종 근간을 만든 문경 봉암사 결사 주역 청담 성철 향곡스님 모습에서 진정한 승가공동체의 길을 생각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어느 스님이 들려준 사연 

말사 주지 인사권을 가진 교구본사 주지 스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본사 주지 선거를 둘러싸고 매번 잡음이 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의 폐허가 된 사찰을 창건 수준으로 복원시켜도 하루 아침에 걸망을 싸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창주 제도를 마련해 사찰 중건에 공이 큰 스님은 평생 주지 권한을 인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그래도 불안은 온존한다. 유달리 직할교구에 새로 등록한 사찰이 많은 이유다. 

그렇다고 본사주지 스님이 마음대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해 전 영남의 모 교구본사 주지 스님은 본사 주지가 됐지만 주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찰이 거의 없다며 탄식 한 바 있다. 이유는 공찰이면서 특정 문중이나 스님 소유처럼 굳어진 공찰 아닌 공찰이 많기 때문이다. 주로 원로 스님들이 사찰 주인이다. 그렇다고 스님을 내칠 수는 없다. 원로 스님은 낡고 퇴락한 사찰을 중창하고 포교에 매진해 신도를 늘린 절대 공헌자다. 이런 사찰은 교구 소속이면서 특정 스님의 상좌들이 주지를 맡는 문도사찰이다. 교구본사라고 해서 함부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같은 사찰이 주로 수말사급인데다 수가 많아 교구장의 재량권이 갈수록 좁아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 교구 안에서 사찰이 없어 발을 구르는가 하면, 마땅한 사람이 없어 애태우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 남쪽 지방의 모 본사 문도 사찰에서 문제를 일으킨 주지를 교체하려 했지만 해당 문도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해 그대로 두는 일이 일어났다. 

사찰 주지 인사 속사정 다양 

교구본사도 주지 인사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한 스님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교구 전체가 하나의 사찰처럼 움직이는 곳이 있는가하면 여러 문중이 함께 모인 원융살림을 사는 사찰도 있다. 본사나 종회의원을 어른 스님의 뜻에 따라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없다. 극히 일부 사찰을 제외하면 대부분 ‘집단지도체제’ 즉 원융살림을 한다. 이 사찰들은 선거 때마다 몸살을 앓았지만 나름의 원칙을 정해 후유증을 최소화 했다. 덕분에 주지 교체를 둘러싼 잡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원칙 역시 흔들리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안정이 일부 스님들 간의 단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 구성원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안정이 아니라 강력한 통제권을 지닌 몇몇 스님들 간의 협약이어서 소외된 다수가 반발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고령화로 원로 스님들의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화 되면서 과거에는 중진 반열에 들었을 소장 스님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점도 작용한다. 60대면 일선에서 물러나 한주(閑主)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80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교구 내 주류 문중이 아니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스님들도 반기를 들면서 예기치 않은 선거가 시행되고 어른 스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을 둘러싼 현실은 아주 다양하고 속내가 복잡해서 사찰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찰재정 개혁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다. 불평등한 승가공동체의 근원을 사찰에서 찾고도 다양한 모습에 맞는 맞춤형 대안을 내놓지 않고 일률적으로 시행하니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승가공동체가 붕괴된 이유가 스님들 간의 빈부격차이고 그 원인이 사찰로 인해 일어난다는 분석에 합의한다면 대안은 사찰 재정이 집중되는 ‘그곳’을 찾아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는 길 밖에 없다. 

맞춤형 개혁 조치 아쉬워

‘그 곳’은 바로 스님이다. 타종단 사찰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어느 불자 건설업자가 이 종단에 소속된 사찰 불사를 하고 어음을 받았는데 주지 스님이 결제를 하지 않았다. 이에 재판을 청구해 승소했다. 그러나 전통사찰로 지정된 이 사찰에 대해 채권자는 아무런 권리 행사를 할 수가 없었다. 사찰 명의 통장은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실질 운영주체는 스님이지만 실제는 사찰 이름으로 모든 재정과 불사가 진행되다 보니 스님 개인이 갖고 있는 재산은 책임에서 모두 빠져 채권자가 힘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종단의 사찰 재정 개혁이 갖는 한계가 바로 실제 주인과 형식적 책임주체의 괴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사찰 재정 개혁은 스님의 개인 통장까지 대상으로 삼는 길이다. 불교의 무소유 정신에도 합당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개혁임을 모두 잘 안다. 

다른 대안은 교구공영제다. 종단 일각에서 몇 해 전부터 제기된 교구공영제는 교구 내 모든 재산을 공용으로 사용하고 분배하는 제도다. 사찰 등급에 관계없이 일정 자격을 부여해 주지로 임명하되 사찰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은 교구에 1차 들어온 뒤 똑같이 분배하는 제도가 교구 공영제다. 

교구는 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도반들 끼리 모여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행정을 운영하는 사실상 결계(結界)다. 교구 공영제는 종단 중심제 보다 저항도 훨씬 덜하고 운영 면에서도 효율적이며 불교 계율이나 역사적 측면을 보더라도 합리적이다. 종단이 추상적 개념인 반면 교구는 스님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승가공동체 회복도 교구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스님들의 지적이다. 

교구 공영제도 대안

전면적 교구 공영제는 아니지만 그 단초는 총무원이 법으로 내놓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만큼 현재 교구 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일부 본사와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이 제기해 총무원법으로 제기한 ‘교구 특별분담 사찰 지정제’가 그것이다. 교구차원의 목적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예산 부족으로 인해 발전을 가로막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교구도 중앙처럼 특별분담사찰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 안은 그러나 아직 종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승가공동체를 회복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교구 안에서 소외된 스님들의 불만이 높아져 위기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구 공영제를 할 수 없다면 다양한 형태의 교구나 결사체를 인정하는 ‘열린 조계종’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재적승을 구성원으로 하는 교구제가 근간인 종단은 안정은 찾았지만 능력 있는 인재를 찾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역동성은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재적승과 교구제는 과거 인사권을 쥔 총무원장이나 다른 문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안정 장치이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소외자를 낳고 있다. 불자들이 가장 신뢰하며 가고 싶어하는 해남 미황사를 만든 지운스님, 현공스님, 금강스님은 다른 문중 스님이다. 대흥사 스님들이 교구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했다면 오늘날의 미황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우리 종단에서 아주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선학원으로 떠난 스님들 중 많은 수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교구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밀려나서 ‘살 길’을 찾아 갔다. 잘못된 선택이지만 마냥 비난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에는 수입이 낮은 사찰은 주지 인사를 내지 못하는 궁벽한 공찰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나다 어느 순간 급속하게 불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러한 현상 역시 현재 교구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나왔다. 

문호 개방으로 경쟁 도입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 교구를 광역 형태로 바꾸어 스님들 간 인사교류 폭을 넓히고 교구 외에 다양한 형태의 결사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된다. 중앙종무기관의 한 재가종무원은 “정토회를 특별교구로 받아들이거나 결혼을 한 예비역 군승들이 종단에 오지 못하고 타 종단으로 가는데 그들만의 결사체를 만드는 등 종단이 문호를 넓히고 다양한 형태를 받아들이면 승가공동체도 살고 우리 종단에 긴장과 활력도 불어넣어 기존 사찰도 자극 받아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불교신문3507호/2019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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