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스님

어떤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어서 누군가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그 누군가는 그 사람이 별로라고 하는 경험들을 한번쯤 갖고 있을 거다. 몇 번의 시행착오 속에서 깨달은 것은 나와 그 사람은 비슷한 업이라서 괜찮고 마음에 들지만 그 두 사람은 업의 모양이 다르기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애써 꾸역꾸역 맞춰주려고 노력 아닌 노력도 많이 했었다. 그러한 일들은 사람이 노력해도 되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일까. 제3자가 봐서는 어떻게 저런 인연을 만났을까 하는 커플도 두 사람에게서는 죽고 못 사는 인연이란다. ‘짚신도 제짝’ 내지는 ‘제 눈에 안경’ 등 그렇게 말하나 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업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상대도 자신의 틀 속에 집어넣고 맞추려고 하지만 상대도 자신의 업의 틀이 있기에 결코 맞추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것을 망각하기에 또 맞추려고 하다가 자꾸만 멀어져 가게 된다.

쉽게 말하면 타인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는 나와 타인의 업의 모양이 다르기에 맞출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일 중에, 한 가지도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같기를 바라지 않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한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밤에 무덤가를 지나다가 귀신을 만나면 그 귀신을 향해 뛰어들어라. 그러면 귀신이 도망간다.” 어린 아이는 엄마에게 되묻는다. “그런데 엄마, 귀신의 엄마도 같은 방법을 알려줬으면 어떻하죠? 귀신도 엄마가 있을텐데….” 

나에게 있다면 남에게도 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불교신문3507호/2019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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