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악’ 한길 30년…“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묻고 또 묻습니다”
‘불교음악’ 한길 30년…“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묻고 또 묻습니다”
  • 김하영 기자
  • 승인 2019.08.05 09: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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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60주년 맞이 특별기획
‘그 발걸음이 역사가 되다’
이종만 좋은벗풍경소리 대표


전도유망한 싱어송라이터…
홀연히 여의도에서 종로로
1996년 앨범으로 공식 데뷔
명실상부 찬불동요 음반 효시
찬불가를 모두의 음악으로…
동요 아이돌노래 트로트까지
“잘 해왔는지 항상 고민합니다”

한국불교의 역사는 1700년이지만 근현대를 거치며 한국불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6·25한국전쟁, 정화, 10·27법난 등 질곡의 근현대사 속에서 한국불교는 좌절의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불교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많은 스님과 불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불교가 풍성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오롯이 한 길로만 정진한 ‘그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한국불교의 새로운 역사를 쓴 그들의 발걸음을 좇아가본다.

이종만 대표가 가는 길은 현대 찬불가 역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표가 안고 있는 좋은벗 풍경소리 발매 찬불가 음반들에서 현대 불교음악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이종만 대표가 가는 길은 현대 찬불가 역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표가 안고 있는 좋은벗 풍경소리 발매 찬불가 음반들에서 현대 불교음악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이종만 좋은벗 풍경소리 대표는 ‘그들’의 특징처럼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잘 안다’는 표현도 ‘상세하게 아느냐’라고 다시 물으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불교의 찬불가, 특히 찬불동요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종만 대표를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찬불가인 ‘오늘은 좋은 날’은 알지만 이 곡의 작곡가가 이종만 대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들’은 이런 존재다.

이종만 대표는 꽤 유명한 가수였다. 음악의 여러 장르 가운데 ‘대중음악’을 고집해온 이 대표는 젊은 시절 싱어송라이터(singer song-writer)로서 각광받았다. 1986년 발매된 이종만 1집 앨범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은 대중에게 이 대표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수록곡인 ‘장돌뱅이’가 인기를 끌면서 방송 출연도 하는 등 이른바 ‘잘 나갔던’ 이종만 대표는 자신의 주무대를 여의도에서 종로(조계사)로 옮겼다. 왜 그랬을까.

“가요계 현실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에 의해 불교와 인연을 맺고 찬불가를 만들 기회를 얻었죠. 정글같이 복잡한 여의도에서 종로로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지더군요.” 이 대표는 ‘절친’ 황학현 씨(현재 봉은사 종무관)의 이끌림으로 불교음악의 길에 한 걸음 내딛게 됐고, 그 후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왔다.

이종만 대표의 찬불가 공식 데뷔는 지난 1996년이다. ‘어린이 찬불동요 창작곡’ 1집이 이 때 나왔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찬불동요라는 기치를 내걸고 16곡의 창작 동요를 수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찬불가는 불자들이 모여 제대로 된 녹음실 없이 기타 반주에 생목으로 노래하면서 카세트 레코더에 녹음하고, 이걸 복제해 나눠줬다. 찬불동요 창작곡 1집도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발매됐지만, 녹음실에서 가수와 악기 연주자들이 참여해 제대로 녹음한 명실상부 음반이었다.

어쩌면 현대 찬불동요 앨범의 효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이때 신나고 재밌는 찬불가를 통해 어린이 청소년 포교를 하자는 ‘좋은벗풍경소리’가 창립되고, ‘풍경소리 창작음반’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2차례 음반이 발매됐다. 얼마 있으면 48번째 음반이 발매되니 단 한 번도 풍경소리 앨범은 빠지지 않고 나온 것이다. 현대 찬불동요 24년의 역사가 멈춤 없이 고스란히 이어져 온 것은 모두 이 대표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히트곡이 쏟아졌다. 연등회를 대표하는 ‘오늘은 좋은 날’을 비롯해 ‘좋은 인연’ ‘너와 나’ ‘님이 오신 날’ 등은 좋은 노랫말로 결혼식장에서도 많이 울려 퍼지는 축가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제작한 찬불가가 몇 곡이나 되는지 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것만 200~300곡, 전체로 보면 500~600곡이 되지 않을까 추산하고 있다. 그에겐 몇 곡을 만들었는지는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이를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만 할까.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데는 괴로움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다. “몇 번이나 이 일을 접으려고 했다”고 이 대표는 털어놓았다. 불교음악은 불교계 전체 사업 가운데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찬불동요는 더욱 그랬다. 새싹포교에 대한 중요성은 언제나 강조됐지만 막상 우선순위를 책정할 때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원력을 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은 커져 갔다. 그래서 결국 결심하게 됐다. 지난 2000년 ‘풍경소리’ 10번째 음반을 내면서 일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풍경소리에서 만든 찬불가는 전국 사찰의 여름과 겨울불교학교에서 사용돼왔다. 이는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지금의 동련)가 주최하는 연수회에서 공개됐다. 그해 연수회에서 다른 것이 있다면 ‘풍경소리가 문 닫는다’는 소문이었다. 연수회를 마친 후 풍경소리 사무실에 팩스가 날아왔다. 청도 운문사 스님이 보낸 편지였다. 내용인 즉슨 그 소문을 듣고 스님들이 모여 대중공사를 했는데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보낸다는 것이었다. 500만원. 풍경소리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찬불가를 하면서 가장 감동스런 순간이었다”며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이 모여 지금까지 찬불가를 계속 제작한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사건(?) 이전과 이후로 풍경소리를 나눌 수도 있겠다. 운문사 스님들의 보시는 지금까지도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그 모습을 지켜본 여러 사찰로 확대되기도 했다. 현재 풍경소리 총재 지현스님(서울 조계사 주지)과의 인연도 이 때 시작됐다. 여러 인연이 모여 풍경소리는 유지될 수 있었다. 

풍경소리는 기존의 찬불동요와 함께 ‘연등회의 노래’라는 음반도 연등회보존위원회 의뢰를 받아 해마다 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음성공양이다. 국악인 박애리부터 ‘연꽃소녀들’이라는 아이돌그룹도 결성돼 노래했다. 특히 올해는 ‘트로트 찬불가’까지 등장했다. ‘타타타’로 유명한 불자가수 김국환 씨가 부른 ‘불자라서 행복합니다’가 그것이다. 찬불가도 진화하고 있다.

풍경소리 창립 후 24년, 개인적인 인연까지 합치면 30년에 가까운 이종만 대표의 찬불가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써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찬불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어떤 미래를 맞이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필연적이다. 이종만 대표는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김국환 씨의 찬불가를 들어본 적 있나요?” 그는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나온 자동차에는 CD플레이어가 없습니다. 음원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휴대전화로 듣는 세상 아닙니까. 찬불가 음원은 만나기 힘듭니다. 찬불가 대중화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죠.” 종단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찬불가에 관심이 없는 교계 매체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한쪽 장르로만 국한하려는 불교음악계 움직임에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이 대표가 설계하는 앞날은 어떨까. 그의 대답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 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찬불가 한 곡이 한 마디 법문이라고 여기고 일한지 30년이 다 돼갑니다. 요즘 들어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잘 해왔는지 반문합니다. 진정 불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이 담은 곡을 만들었는지 고민합니다.” ‘처음처럼’, 그래서 이종만 대표가 계속 만들어갈 찬불가의 미래는 안심이 된다. 

■ ‘오늘은 좋은 날’ 탄생 비화

불자들에게 찬불가를 대표하는 곡이 무엇인가 물으면 ‘오늘은 좋은 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불자뿐 아니라 일반에까지 익숙한 노래이자 연등회를 상징하는 불교음악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좋은 날’은 그냥 만들어진 곡이 아니다. 좋은벗 풍경소리가 창립한 이듬해인 1997년 이종만 대표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의 부름을 받았다.

총무원장 집무실에 들어서니 자신이 만든 찬불가 ‘길 떠나자’가 흘러나오고, 월주스님이 노래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노래가 참 좋다”고 칭찬한 월주스님은 “불교가 젊어져야 한다. 신나야 한다. 신나는 노래 하나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이때를 연등회(연등축제)를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둔 시간으로 기억했다.

갑작스런 주문에 촉박한 일정,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 도저히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국 축제 일주일 전에 노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찬불가가 ‘오늘은 좋은 날’(황학현 이종만 작사/이종만 작곡)이다. 그해 연등회 회향한마당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 노래는 앙코르를 네 차례나 받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늘은 좋은 날’은 여러 의미가 있는 찬불가다. 오롯이 연등회만을 위한 ‘연등회의 노래’라는 별도의 음반이 제작되는 계기가 됐고, 찬불가의 대중화에도 큰 몫을 했다. 이종만 대표는 “이 노래를 통해 불교음악이 대중음악으로 인정받고, 불교음악가가 뮤지션 대우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506호/2019년7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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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진 2019-08-05 13:26:42
이종만 선생님,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수고많으셨어요.
앞으로도 불교음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