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道士)'와 '선사(禪師)'들이 함께 꿈꾼 대자유
'도사(道士)'와 '선사(禪師)'들이 함께 꿈꾼 대자유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07.2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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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와 도가의 만남
유와 무-삶과 죽음 넘은
절대긍정의 존재론 설명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 상·하

이은윤 지음 민족사

다음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대화다. “동곽자 : 도대체 도(道)라는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 : 도는 어디든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소. 동곽자 : 꼭 집어서 분명하게 말해 주십시오. 장자 : 땅강아지나 개미에게도 있소. 동곽자 : 어찌 그렇게 하찮은 것에 있다는 말입니까? 장자 : 논밭에 있는 강아지풀이나 피 따위에도 있소. 동곽자 : 어찌해서 점점 더 하찮은 것에 있습니까? 장자 : 기와나 벽돌에도 있소. 동곽자 : 점점 더하군요. 장자 : 도는 똥이나 오줌 속에도 있소.”

도는 어디에든 존재한다는 ‘도무소부재론(道無所不在論)’이다. 도(道)는 성스러운 곳에만 있지 않고 하찮고 더러운 곳에도 두루 있다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인데,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겐 참 낯익은 이야기다. ‘도는 마른 똥 막대기에도 있다’는 운문 선사나 ‘뜰 앞의 측백나무’라는 조주 선사나 ‘여릉의 쌀값은 얼마이더냐’고 물은 청원 선사나, 하나같이 이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선불교의 ‘일체중생 실유불성’과 ‘처처불(處處佛)’은 도무소부재론의 자장 안에 있다.

선불교는 ‘중국화’된 불교다. 중국적 진리인 도(道)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개조된 불교다.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지향한 도가(道家)가 그 선구자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적 사유를 종합한 노장(老莊) 사상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수백 년 전부터 도에 대해 연구해왔다. 선불교는 달마가 중국으로 넘어온 5세기 무렵에 태동했으니 시간상으로 노장이 우위에 있다.

불교는 중국에서의 원활한 포교를 위해, 불교의 공(空)을 도가의 무(無)에 대입해 설명하는 따위의 ‘격의(格意)불교’를 개발했다. 이렇듯 노장과 선불교의 유사성은 오래 전부터 보편적으로 입증된 바다. 이은윤 전 중앙일보 종교담당 대기자가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을 펴내며 그 유사성을 다시 한 번 짚었다.  
 

지난 22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은윤 전 중앙일보 대기자.
지난 7월22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은윤 전 중앙일보 대기자.

저자는 선불교의 도와 노장의 도는 일치한다고 단언한다. 전자는 만물의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전제로 한 입체적 세계관이며 후자는 “복 속에 화가 깃들어 있고 화 속에 복이 숨어 있다(도덕경)”는 원융의 세계관이다. 결코 세속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려는 점이 같고 낙관주의가 같다. ‘분별심을 버리라’는 충고도 동일하다. 세상만사 서로 어울리며 돌고 도는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고 당장에 휘둘리지 말라는 해법이 동시에 자주 등장한다.

“지극한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분별하여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을 삼가면 된다(至道無難 唯嫌揀擇)”는 선종 3조 승찬의 <신심명> 구절은 “빛과도 조화하고 먼지와도 같이 한다(和其光 同其塵)”는 노자의 여유로움과 정확히 포개진다. 책에는 노장과 선불교 둘 다 꿈꿨던 절대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저자의 독특하고 뛰어난 선문답 해법도 엿볼 수 있다.  

이은윤 선생은 30년 이상 중앙일보 종교담당 대기자로 활약했다. 선에 대한 두터운 관심으로 <중국 선불교 답사기(전4권)>를 비롯해 <혜능평전>, <선시>, <화두 이야기>, <왜 선문답은 동문서답인가> 등의 저서를 내며 꾸준히 안목을 기르고 내보여왔다. 이번 신간에서도 발견된다.  중앙일보 문화부장·편집국장·논설위원·종교전문위원을 지냈고 한국불교선학연구원장과 금강불교신문 사장 겸 주필을 역임하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저자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출세 지향의 현실 종속과 내면적 정신 독립이라는 이중성 속에서 헤매다가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을 맞았다”며 마지막으로 원고를 정리했다. 노장이든 선불교든 죽음에 대한 각자의 해결책이다. 끝내 넘어질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삶의 근본적 한계를 버티며, 치열하게 고민해 내놓은 나름의 대안일 것이다. 노장과 선불교는 일반적으로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주제이니, 책의 내용 역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인생 어쨌든 한번 살다 가는 것’이라는 단출한 심정으로 대하면 술술 읽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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