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곁으로 돌아와 복혜의 대 법비를 내려주십시오”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서 다비식, 49재 서울 정각사서 봉행

중앙승가대 전 총장 종범스님이 법어를 하고 있다.
중앙승가대 전 총장 종범스님이 법어를 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 조계종 원로 비구니 태허당(太虛堂) 광우(光雨)명사(明師) 영결식이 7월22일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봉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스님, 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금곡스님, 전 동국대 교수 호진스님과 청도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 전국비구니회 회장 육문스님 등 비구니 원로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광우스님은 현대 조계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스님은 1940년 국내 최초 비구니 강원인 상주 남장사 관음강원 첫 졸업생이며, 비구니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동국대를 졸업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종단 최고 비구니 스님에게 수여하는 ‘명사(明師)법계’를 처음으로 받기도 했다.

비구니를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스님들과 뜻을 모아 1968년 전국비구니회 전신인 ‘우담바라회’를 결성했다. 이어 스님은 1985년 전국비구니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숙원사업인 전국비구니회관 건립을 이끌었다. 서울 정각사를 창건해 전법과 포교에 헌신하기도 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종범스님, 원행스님, 명성스님, 육문스님을 비롯해 원로 비구니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종범스님, 원행스님, 명성스님, 육문스님을 비롯해 원로 비구니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국비구니회장 육문스님은 이날 추도사에서 “광우스님은 종단이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법통을 외호하며 비구니계를 대표해 종단을 지키고 일으켜 세웠다”며 “6000여 비구니 스님들의 구심점이 돼 비구니 위상을 높이고 회관건립과 운영을 주도적으로 이끈 열정은 언제까지 후학들에게 귀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 광우스님과 각별한 인연인 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스님도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종범스님은 법어에서 “생멸이 적멸인 대승신심과 무주상 수행의 보살원력으로 정진하고 또 정진했다”며 광우스님을 회고했다. 이어 “스님은 평소 바람은 떠날 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라 하셨다”며 “가실 때도 자취 없이 가시듯이 오실 때도 소리 없이 오십시오! 다시 이 사바세계에 속히 오셔서 보살 원력을 이루어 주십시오!” 하고 설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총무부장 금곡스님이 대독한 추도사에서 “모든 불자들의 사표이며 비구니계의 큰 스승인 스님이 이렇듯 원적에 드니 스님의 후학 제자들과 수많은 인연들은 그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며 “조계종은 ‘불교는 실천의 종교이며 법당 불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를 키우는 불사이며 바르게 믿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소 말씀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대신해 총무부장 금곡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대신해 총무부장 금곡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광우스님을 평생 의지해온 선배이자 도반이라고 소개한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은 “열반락을 만끽하기 위해 떠나는 스님을 축하하고 박수를 쳐드려야 마땅한 자리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밀려오는 슬픔을 없는 듯 감출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저희들 곁에 원생으로 돌아오셔서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후학과 중생들에게 다시금 복혜의 대 법비를 내려달라”며 조사를 마쳤다. 또 전 동국대 교수 호진스님, 서윤길 동국대 명예교수가 조사를 한 데 이어 상도선원장 미산스님이 추모시를 낭송했다.

상좌를 대표해 정목스님(서울 정각사 주지)은 “은사 스님은 평소에 여름이 되면 연꽃구경 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지금 극락세계 연꽃을 보러 잠시 여행을 갔다”며 울먹이며 광우스님의 유지도 전했다.

“은사 스님은 ‘행여나 종단에서 종단장을 하자고 하거나 내가 비구니회장을 두 번 지냈다고 해서 비구니회장으로 하자고 하더라도 하지 마라. 수행과 정진에 매진하는 스님들을 번거롭게 하고, 발걸음을 붙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뜻이다. 조촐하고 소박하게 문중장으로 치르도록 해라.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마라. 내가 세상에 없으니 나를 위해 귀한 발걸음 해준 스님에게 베풀어준 게 없다. 다비식 하겠다고 직지사까지 가지 말고, 가까운 화장터에 가서 내 몸뚱이를 태워달라’고 말씀했다. 직접 당부한 말씀이라 그 뜻만큼은 받들어드리고 싶었다. 은사 스님은 새로운 곳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스님 육신 버리는 새로운 장소를 보여드리고 싶어 굳이 추모공원을 선택했다. 번거로운 길을 택한 제 부족함을 부디 용서해주기 바란다.”

광우스님의 유지를 전하던 정목스님이 끝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면서 영결식장 곳곳에서 스님과 신도들은 생전의 어른 스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결식 후 스님들은 광우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한편 스님 49재는 서울 정각사 대웅전에서 봉행된다. 초재는 7월24일 오전10시며, 49재는 9월4일 오전10시에 봉행된다.
 

영결식장으로 스님의 위패와 진영을 이운하고 있다.
영결식장으로 스님의 위패와 진영을 이운하고 있다.
상좌 정목스님과 문도 대표 태연스님이 헌다와 헌향을 하는 모습.
상좌 정목스님과 문도 대표 태연스님이 헌다와 헌향을 하는 모습.
상좌를 대표해 정목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상좌를 대표해 정목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다비식장으로 스님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다비식장으로 스님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많은 스님과 신도들의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많은 스님과 신도들의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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