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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마음 간다는 그 말, 윤구병이 곱씹은 불교

윤구병 지음 / 호미

철학자이자 농부인 저자가 부처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사 이야기다. <아픈데 마음 간다는 그 말, - 윤구병이 곱씹은 불교>는 불교계 잡지 ‘해인’ 지와 ‘불광’ 지에 쓴 글 29편을 모아 실었다.

윤구병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이후 변산반도에 자리를 잡아 변산공동체를 꾸리고, 틈틈이 글을 쓰는 농사꾼으로서 살고 있다.

“물음이 발라야 대답도 바를 수 있다. 살 길이 없고, 살릴 길이 없는 처지에서 살겠다고, 살리겠다고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물음이 바른 물음이다(194쪽).” 간화선의 시작은 화두이고 화두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이어간다.

선사들의 수행이 끊임없이 의심하는 데서 출발하듯이, 윤 씨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도 새롭게 질문을 하곤 한다.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숱한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 속의 언어들은 토속적이고 구성진 언어들이다. 전형적인 농부의 얼굴을 한 글쓴이를 닮았다. 그가 곱씹으며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해학적인데, 세상에 대한 두터운 걱정과 연민을 깊이 박아 넣었다.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픈 데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오랜 이치이고 그 본능적 자비의 충실한 실천자인 불교의 시선을 우리 모두가 앉은 자리곳곳에 비추려 한다.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나름의 불교적 시각을 바라본 세상사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나름의 불교적 시각을 바라본 세상사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는 진보 진영의 학자이며 통일운동가다. “우리는 대한 국민도 아니고, 조선 인민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이다(196쪽).” 몇 년 전부터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화두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그에게는 불국토(佛國土)다.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날마다 염불하듯 되뇐다.

책에서는 평화마을 만들기에 동참하며 왜 이 땅에 하루빨리 평화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과 특히 쓰레기 문제 해결과 마을 공동체를 살릴 방법을 모색하며 참여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간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박차고 왜 농촌에 터를 잡았는지, 남들에겐 고생길일 뿐인 그 길을 나선 이유에 대해서도 적었다.

“문명의 잘못된 교육 정책으로 머리만 키우다가 쓸모없다고 버림받아 살길이 없는, 그래서 하릴없이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피 말리는 경쟁 대신에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소비만 일삼는 ‘부랑자’에서 생산하는 ‘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난 스무 해 가까운 내 경험에 따르면, 도시 학교에서 내침당한 아이들이 변산 공동체 학교에서 핸드폰 없이도, 텔레비전 보지 않고도, 게임에 코를 박지 않고도, 머리 굴리는 시간에 손발 놀리면서도, 어른들 일손 도우면서, 제가 쓸 용돈 달라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으면서도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223쪽).”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저자의 지고지순한 한글사랑이다. 월간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2016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으로부터 ‘우리 말글 으뜸 지킴이’로 뽑힌 이력을 실감케 한다. 전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과 함께 ‘불한당(불교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무리)’을 만들어 모임을 꾸리고 있기도 하다. 대학 다닐 때부터 자신만의 한글 사전을 만들었던 그가 책에서 야심차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불교용어의 ‘순 한글화(化)’다.

어제부처(전세불), 이제부처(현세불), 아제부처(내세불), 더할 나위 없이 바로 고른 바른 깨달음(아누다라삼먁삼보리), 빔이 아니고(색불이공), 빔은 ‘것’이 아니다(공불이색), ‘것’이 곧 빔이고(색즉시공), 빔이 곧 ‘것’이다(공즉시색), 빛에 기대지 않아도 세상에 떠도는 온갖 소리(세음, 世音), 몰록 깨치고(돈오), 후딱 닦음(돈수)도 마음이 서둘러서 하는 짓이고, 차츰 깨닫고(점오), 찬찬히 닦음(점수) 등등.

고유어들로 만들어낸 신조어들이 이채로우면서도 무게감이 있다. 무엇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상상력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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